연희진은 화도진과 함께 수도의 관문으로 인천 부평 연안이 개항지로 제시될 것에 대비하여 설치된 진이다. 강화도조약 체결 후 일본이 부산 외에 2개 항구를 더 개항하기 위하여 서해안을 탐사하고 있을 때, 조선은 그들이 인천의 개항을 요구해올 것에 대비하여 1879년(고종 16) 인천과 부평연안에 진(鎭)과 포대(砲臺)를 설치하였는데, 그 중 부평에 설치된 진을 연희진이라고 하였다.
이 진은 연희포대(일명 龍頭砲臺)와 가정포대(佳亭砲臺) 등을 관할하였는데, 인천개항을 허용하기로 결정한 뒤인 1882년에 혁파되었다. 연희진이 혁파된 후 관할하던 부평 연안 포대들은 화도진 관할로 이관된 것으로 보여진다. 연희포대는 본래 3문의 포좌(砲座)를 갖추고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 포좌는 없어지고 포대 주변에 둘러쳐졌던 돌축대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