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도동서원은 1605년(선조 38) 지방 유림에서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였던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서원이다. 중정당은 서원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강학을 하는 강당(講堂) 건물이며 강당의 후면에는 사당(祠堂)이 있다.
도동서원은 1607년(선조 40)에 왕이 직접 쓴 ‘도동서원(道東書院)’ 현판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1871년(고종 8)의 서원철폐령의 대상에서 제외된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이며, 경사진 대지 위에 북동향하여 있다.
팔작지붕을 한 2층 누각인 수월루(水月樓)를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맞담 사이로 난 사주문(四柱門)인 환주문(喚主門)이 있다. 이 문을 들어서면 강학 공간(講學空間)이 나타나는데, 마당의 건너편에 강당인 중정당(中正堂)이 있고 마당의 좌우에는 동재인 거인재(居仁齋)와 서재인 거의재(居義齋)를 두었다.
강당인 중정당의 기단은 다른 건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매우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전면의 기단은 크고 작은 방형의 다듬은 돌들을 줄 맞추지 않고 흐트러지게 쌓은 후, 운두가 낮은 장대석을 다듬어 갑석을 얹었다. 기단의 정면에는 좌우에 2개의 석계를 두어 강당에 오르게 하였으며, 기단의 안측 끝 부분에는 갑석 밑에 용두(龍頭)를 1개씩 빼내었다.
평면은 가운데 3칸을 대청으로 꾸미고 대청의 좌우에는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인데, 온돌방의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다. 좌우 온돌방의 전면에는 머름 위에 문얼굴을 조그맣게 내어 분합의 띠살무늬 덧창을 달고 안쪽에는 미닫이문을 달았다. 뒷벽 3칸에는 바라지창을 설치하였다.
가구는 5량가의 구조이며 대청의 천장은 연등이다. 공포는 외일출목이 있는 주심포계 건물로 외출목의 행공첨차를 받치는 소로는 연꽃봉우리 모양이며, 창방의 중심에는 화반을 하나씩 받쳤다.
사당은 강당 뒤의 경사진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김굉필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돌층계를 오르면 사당의 출입문인 3칸 규모의 삼문이 나타나고, 삼문을 들어서면 사당이 있다. 사당은 전면에 퇴칸이 없는 3칸 규모의 맞배지붕이며, 내부는 통칸으로 처리되었다. 전면에는 각 칸마다 2짝 당판문을 설치하였다.
기단은 판석을 나란히 세운 후 운두가 얇은 갑석을 얹었으며, 기단의 정면에는 석계를 2곳에 두어 사당으로 오르게 하였다.
기둥은 민흘림의 원기둥이 사용되었는데, 기둥 위에는 주두를 놓고 첨차와 소로로 공포를 짜 주심도리 밑의 장혀를 받치게 하였으며, 외일출목에서는 초각된 헛첨차로 행공첨차를 받치고 이들이 외목도리를 받는 익공식에 가까운 주심포식 건축이다.
일곽을 이룬 맞담은 산석으로 쌓은 후 그 위에 흙과 기와를 사용하여 담장을 이었는데, 형태와 구성이 매우 아름다운 담장이다.
조선 중기 전학후묘(前學後廟)의 전형적 배치형식과 강당, 사당의 공포 양식 및 담장 구성수법 등에서 건축적 특성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