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개성부(開城府)의 도원역(桃源驛)에서 시작하여 동주(東州, 강원도 철원군)를 거쳐 교주(交州, 강원도 회양군) 방면으로 향하는 역도이다.
『고려사』 권82 병지2 참역(站驛)에, “도원도(桃源道)는 21개의 역을 관할하는데, 도원(桃源)[송림(松林, 황해북도 개성특급시)], 백령(白嶺)[단주(湍州, 경기도 파주시)], 옥계(玉溪)[장주(章州, 경기도 연천군)], 용담(龍潭)·풍천(楓川)[동주], 임단(臨湍)[평강(平康, 강원도 평강군)], 송간(松閒)·단림(丹林)[남곡(嵐谷, 강원도 회양군)], 은계(銀溪)[교주], 임강역(臨江驛)·전원(田原)[동주], 도창(桃昌)·남역(南驛)·단암(丹嵒)[김화(金化, 강원도 김화군)], 동음역(洞陰驛)·삭녕역(朔寧驛)·봉곡(烽谷)[승령(僧嶺, 경기도 연천군)], 통언(通堰)[교주(交州)], 이령(梨嶺)·직목(直木)[금성(金城, 강원도 김화군)], 웅양(熊壤)[기성(歧城, 강원도 철원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도원도라는 역도 명칭이 『고려사』에서 가장 먼저 언급된 도원역의 역명에서 유래하였던 만큼, 도원역은 이 역도가 관할하는 21개의 역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역이다. 도원도와 같이 각 역도의 첫머리에 기재된 대표 역의 명칭으로 역도 명칭을 삼은 경우는 궁예(弓裔)가 철원·송악을 중심에 두고 확보한 후고구려 영역 내에 분포하면서, 역도의 대부분 역이 고려 초기의 또 다른 역제(驛制)인 ‘6과체제’에서 확인되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들 역도가 분포하는 영역은 교통 중심지대인 개경을 중심으로 ‘X’자형의 간선 교통로가 형성되었던 곳으로, 도원도의 주요 진출 루트는 개경의 동북쪽 방면의 동주-교주를 경유하여 철령(鐵嶺)까지였다.
교주의 북쪽 요해처(要害處)인 철령은 행정구역인 교주도(交州道)와 동계(東界)의 경계선이면서, 역도인 도원도와 삭방도(朔方道)의 분기점이기도 하였다. 개경에서는 도원도와 삭방도를 통해 동계의 주요 군사거점인 안변도호부(安邊都護府) 등주(登州, 함경남도 안변군) 관내에 이를 수 있었다.
철령 전후(前後)의 산지 교통 경로는 도원도를 따라 교주에 이른 다음, 도원도 은계역-철령-삭방도 고산역(孤山驛, 등주 위산현) 순으로 하여 등주로 향하였다. 그리고 도원도는 동주 관내에서 개경도호부로 진입하는 지점을 가로 지르는 동강(東江)으로 불리는 임진강을 도하하였다. 즉, 도원도의 옥계역을 지나 임진강의 징파도(澄波渡)를 건너 백령역-도원역을 통해 개경으로 진입하였다. 특히 도원역은 장단도(長湍渡)에서 남쪽의 임진강을 건너 청교도(靑郊道)의 단조역(丹棗驛, 적성현)을 통해 남경(南京)으로 연결되는 개경의 동·남쪽 교통 분기 지점이었다.
고려시대 도원도는 개경에서 강원도 철원·회양과 철령으로 향하는 동북 방면의 간선 교통로의 일부로 그 중요도가 작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의 분단으로 인해 현지답사를 비롯한 본격적인 조사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아 역도의 실체 파악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