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경상도의 주요 고을인 진주(晉州) 관내에 위치한 24개 역을 아우르면서, 소백산맥의 고갯길을 통해 전라도 전주(全州) 관내에 위치한 4개 역을 관할하는 역로망이다.
『고려사』 권82 병지2 참역(站驛)에, “산남도(山南道)는 28개의 역을 관할하는데, 반석(盤石)[전주], 축산(築山)[고산(高山,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단령(丹嶺)[진안(鎭安,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평거(平居) · 정수(正樹) · 조촌(竈村) · 소남(小男)[진주], 관율(灌栗)[사주(泗州, 경상남도 사천시)], 신안(新安)[강성(江城, 경상남도 산청군)], 율원(栗原) · 횡포(橫浦)[하동(河東, 경상남도 하동군), 평사(平沙)[악양(岳陽, 경상남도 하동군)], 상녕(常寧)[진해(鎭海,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완사(浣沙)[곤명(昆明, 경상남도 사천시)], 부다(富多)[반성(班城, 경상남도 진주시)], 지남(知男)[의령(宜寧, 경상남도 의령군)], 속양(速陽) · 권빈(勸賓)[합주(陜州, 경상남도 합천군)], 성기(星奇)[거창(居昌, 경상남도 거창군)], 무촌(茂村)[거창(居昌)], 유린(有隣)[가수(嘉樹, 경상남도 합천군)], 사근(沙斤)[이안(利安, 경상남도 함양군)], 춘원(春原) · 배둔(排頓) · 망린(望隣)[고성(固城, 경상남도 고성군)], 덕신(德新)[남해(南海, 경상남도 남해군)], 오양(烏壤)[거제(巨濟, 경상남도 거제시)], 달계(獺溪)[청거(淸巨,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산남도는 소속 역의 분포 현황만 놓고 보더라도 진주를 중심에 두고 동서남북 각 방향으로 뻗어 있는 전형적인 ‘한 개 고을 명칭에서 유래한 역도 명칭 유형’에 유사한 형태를 띠므로 ‘진주도(晉州道)’라고 칭해도 별 손색이 없다. 그렇지만 산남도라는 역도 명칭은 성종대 10도제 때의 행정구역인 산남도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해된다.
산남도는 진주 관내 각 방면의 소속 군현으로 뻗어 나가면서, 서북쪽 방면의 육십령(六十嶺)과 팔량현(八良峴, 팔량치)과 같은 고개를 넘어 전주 관내와 연결되는 특징이 있다. 산남도의 사근역에서는 육십령을 넘어 단령역에 이르는 경로와 팔량현을 넘어 남원도(南原道)의 인월역(印月驛, 전라도 운봉현)에 이르는 경로가 열려 있었다. 즉 산남도를 통해 진주∼육십령∼전주간 역로와 진주∼팔량치∼남원간 역로가 개설되어 있었다. 이 경로는 진주에서 전북특별자치도 지역으로의 통로일 뿐 아니라 역로를 더 확대하면 경상도 서부지역과 양광도 · 경기권역이 서로 소통하는 교통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산남도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다른 역도에서 확인되지 않는 내용으로 도서(島嶼)지역에도 역 시설이 확인된다는 점이다. 남해도에 덕신역과 거제도에 오양역이 각각 위치하여 이들 섬도 고려시대 육상교통 네트워크인 22역도-525역체계 속에 편입되어 있었던 것이다.
고려시대 산남도는 역도 명칭이 성종대 10도제 때의 행정구역인 산남도에서 유래하였다. 또한 진주를 중심으로 사방에 이르는 역로를 관할하면서도 소백산맥의 육십령과 팔량치를 넘어 전주나 남원부로 연결되는 분포 양상을 보였다. 아울러 진주 관내의 남해도와 거제도에도 덕신역과 오양역이 분포하여 도서지역도 육상교통체계 속에 편입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