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창 (꺾)

선사문화
물품
나무 자루 끝에 창날을 가로 방향으로 결박하여 상대방을 찍거나 베어 내는 용도로 사용하였던 청동 무기.
이칭
이칭
동과(銅戈), 놋과
물품
재질
청동
용도
무기
제작 시기
청동기시대~철기시대
내용 요약

꺾창은 나무 자루 끝에 창날을 가로 방향으로 결박하여 상대방을 찍거나 베어 내는 용도로 사용하였던 청동 무기이다. 보통 동과(銅戈)라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 등장하여 중원 문화의 확산 과정에서 함께 전해져서 여러 토착화된 형식들로 변형된다. 중국 랴오닝〔遼寧〕 지역에서 전국시대에 유행했던 요령식꺾창과 한반도와 일본열도에서 초기 철기시대에 유행했던 한국식꺾창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청동 꺾창은 문화권이 바뀌면서 청동 무기가 어떤 형태와 방식으로 변용되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유물이다.

목차
정의
나무 자루 끝에 창날을 가로 방향으로 결박하여 상대방을 찍거나 베어 내는 용도로 사용하였던 청동 무기.
내용

청동 꺾창은 보통 수직으로 세운 길이 100~300㎝의 나무 자루 끝에 날을 지닌 길이 10~30㎝의 창날을 가로 방향으로 결박하여 찍는 용도 또는 베는 용도로 사용하는 청동 무기이다. 보통 동과(銅戈)라고 하며, 중원 지역에서 비롯되어 주변 지역으로 확산된다.

중원식꺾창은 상주시대를 거치면서 원(援; 윗날)-호(胡; 앞날)-내(內; 꼬다리)를 지닌 정형화된 청동 꺾창이 널리 사용되며, 서한(西漢)시대까지 일부 확인된다. 원래 넓은 평야지대에서 전차전을 수행하기 위해 고안해 낸 것이어서 상하 방향으로 찍거나 좌우 방향으로 베는 다용도로 사용되어 실용성이 높다.

이에 따라 여러 부위에서 날이 갈려 있어 비대칭형이며, 불필요한 문양 역시 없다. 직선적인 날을 지닌 20㎝ 이하의 소형 꺾창이 다수지만, 곡선적인 날을 지닌 30㎝ 내외의 대형 꺾창도 적지 않게 확인된다.

요령식꺾창은 중원식꺾창이 랴오닝 지역으로 전해짐에 따라 토착 동검 제작 전통을 바탕으로 변형시켜 만든 무기이다. 구릉산간지대에서 소규모의 보병전을 수행하는 데에 적합하게 찍는 용도 위주로 변형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보통 길이 12~20㎝의 소형이다.

서기전 5~4세기경 랴오닝 지역의 여러 유적에서 확인되며, 서기전 3세기경 북한 지역으로 전해져서 한국식꺾창으로 변천된다. 굵은 등대〔주척(柱脊)〕를 중심으로 양날개가 있는 대칭 구조, 짧은 주1, 깊은 피홈 등의 속성들은 중원식꺾창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한편, 한국식꺾창을 닮은 특징이다.

한국식꺾창은 보통 주2라고 불린다. 과거에는 중원식꺾창이 기원으로 지목되었으나, 최근에는 기본적인 구조와 형태가 비슷하게 생긴 랴오닝 지역의 요령식꺾창을 직접적인 조형으로 보는 것이 통설화되었다. 남한 지역의 영암과 완주 갈동 유적에서 석제 거푸집이 확인되어 현지에서 직접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길이 20~30㎝의 것이 주로 확인된다.

한국식꺾창은 요령식꺾창의 길이가 증가하고 너비가 감소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여 형성된다. 즉, 상하 양쪽 날이 직선화되면서 더욱 짧아지며, 자루받침이 완전 사라지며, 더욱 커진 것이 특징이다.

서기전 3세기경 이후 청천강의 이남 지역에서 주로 확인되나, 서기전 3세기 말 전후에는 한국식의 세형동검 문화권 외곽으로 전해져서 두만강 유역의 온성 강안리 유적이나 중국 하북 지역의 연하도(燕下都) 신장두(辛莊頭) 30호묘에서도 확인된다.

또한 서기전 200년경에는 남한 서부 지역에서 일본 큐슈〔九州〕 지역으로 재파급되었고, 이후에는 중광형(中廣形)-광형(廣形) 등의 재지화된 유문동과가 서기 전후까지 널리 사용된다. 이것들은 꺾창몸이 납작하고 날이 뭉툭하여 실용성을 잃은 의기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한국식꺾창은 서기전 1세기경을 전후하여 동남한 지역을 중심으로 유문식이 크게 유행하였는데, 서북한 지역의 평양 토성동 486호묘와 서남한 지역의 논산 은진면 일대에서 고식으로 추정되는 유문식동과가 확인됨에 따라, 서기전 2세기경 이후 위만조선이나 마한 지역에서 진 · 변한 지역으로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이것들은 의기화된 무기류로 이해되고 있다.

의의 및 평가

청동 꺾창은 중원 문화권에서 비롯되었으나 문화권이 바뀌면서 청동 무기가 어떤 형태와 방식으로 변용되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유물이다. 중원식꺾창이 대규모의 전차전과 보병전에 어울리며 베기와 찍기 겸용으로 사용된 무기라면, 요령식꺾창과 한국식꺾창은 소규모의 보병전(또는 백병전)에 더욱 잘 어울리며 대개 찍기용으로 사용된 무기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논문

이후석, 「銅戈의 사용 맥락을 통해 본 성격 추정」(『嶺南考古學』 67, 영남고고학회, 2013)
조진선, 「한국식동과의 등장배경과 신장두 30호묘」(『湖南考古學報』 32, 호남고고학회, 2009)
이건무, 「한국식 동검문화」(『韓國의 靑銅器文化』, 國立中央博物館 · 國立光州博物館, 1992)
주석
주1

칼, 괭이, 호미 따위의 자루 속에 들어박히는 뾰족하고 긴 부분.    우리말샘

주2

창날의 길이가 짧고 너비가 좁은, 놋쇠로 만든 창. 초기 철기 시대에 썼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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