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일록(東槎日錄)』은 조선 숙종 때의 역관(譯官) 김지남(金指南, 1654~?)이 통신사의 일행으로 1682년(숙종 8) 5월부터 11월까지 7개월간의 사행을 기록한 것이다. 당시 사행 일행은 정사 윤지완(尹趾完), 부사 이언강(李彦綱), 종사관 박경후(朴慶後), 왜어역관(倭語譯官) 홍우재(洪禹載)였다.
1책으로 된 필사본으로, 일본 기행 기록을 집대성한 『해행총재(海行摠載)』 제23책에 수록되었다.
이 책의 내용은 서(序), 473명의 사행 명단, 가져간 물건 명세, 일기, 일본왕환총목(日本往還總目), 그리고 제주에 표류한 중국 사람에게 실정을 물은 수본(手本) 및 생존자와 이미 사망한 사람의 명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사행은 1681년(숙종 7)에 도쿠가와 이에쓰나[德川家綱]가 죽고 쓰나요시[綱吉]가 제5대 관백(關白)으로 습직(襲職)할 때 새 관백에 대한 경조사행(慶兆使行)을 요청해 파견한 것이다.
내용 가운데에 일기는 주로 일본의 산천, 지리, 명승, 고적, 사찰 등을 예리한 필치로 흥미있게 서술하였다. 일본왕환총목은 사행의 일정을 짤막하게 20행으로 줄여 한눈으로 볼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제주에 표류한 중국 사람에게 실정을 물은 수본은 일본에 사행으로 다녀온 뒤, 1688년(숙종 14)에 중국의 표류인과 해남(海南)에서 문답한 내용이다. 이것은 주로 지역 간의 뱃길, 청나라의 해금(海禁)과 통관 절차에 관한 내용으로 외국 사행에 필요한 자료가 되도록 뒤에 첨부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행의 기록으로 또 왜어역관(倭語譯官)홍우재(洪禹載)의 『동사록(東槎錄)』이 있는데, 이 두 책의 내용은 서로 중복되는 내용도 많지만 각각 특성이 뚜렷한 점이 있다. 기록은 중대 사건보다 보고 들은 평범한 것들을 기록했고, 역관답게 독특한 안목을 지니고 원문에 간주(間註)와 소제목을 많이 붙였다.
간주는 이수(里數)나 일본의 물명(物名) 등에 붙였는데, 어떤 것은 한음(漢音)의 본음대로 표기하기도 하였다. 또 숫자나 고유명사에 결(缺) 표시한 것이 많은데, 그 만큼 저자가 정확을 기하기 위해 노력했던 증거이기도 하다.
홍우재의 『동사록』과 함께 17세기 후반 일본의 정황뿐만 아니라 한중일 동아시아의 교류와 외교 양상을 이해하는데 기본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