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건국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이성계(李成桂)가 직접 거느리던 친군을 의흥친군위로 편성하여서 종2품 이상의 종실(宗室)과 훈신(勳臣)을 그 절제사로 임명하여 지휘하도록 하였는데, 동지절제사는 이 절제사의 직급 가운데 하나이다.
1393년에 설치된 의흥삼군부에도 이러한 체제가 계승되어 중군(中軍)과 좌군·우군에 각각 정1품의 도절제사 또는 종1품의 절제사 1인, 정2품의 지절제사 또는 종2품의 동지절제사 1인씩을 임명하여 상장군(上將軍) 이하의 군직에 의해 지휘되는 의흥친군좌위·의흥친군우위 등 10위의 군사력을 통할하게 하였다.
의흥삼군부 동지절제사의 구체적 직함은 중군의 동지절제사인 경우 ‘동지중군절제사’라 하였다. 동지절제사 또한 종실이나 훈신 가운데서 임명되었고, 변방에 침입한 왜구 등의 외적을 막도록 중앙군을 인솔, 파견하기도 하였으며, 각 도의 도관찰출척사(都觀察黜陟使)나 병마도절제사로 임명되는 경우에는 삼군동지절제사 직함을 가진 채 부임하기도 하였다.
동지절제사는 1400년(정종 2) 사병이 혁파된 데 이어서 1401년(태종 1) 의흥삼군부가 승추부(承樞府)로 개편됨으로써 자취를 감추었다. 1403년삼군도총제부(三軍都摠制府)가 설립된 뒤로는 중군·좌군·우군에 각각 도총제 이하 총제·동지총제·첨총제의 직위가 마련되어 각군을 관장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