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금된 철불로 보는 견해도 있다. 1702년경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수마제전 내에 봉안되어 있으나 원 소재지는 알 수 없다. 현재는 간단한 형식의 석조 팔각대좌(八角臺座) 위에 안치되어 있는데, 허리가 길게 표현된 반면 무릎 높이가 낮아 신체 비례는 균형을 잃고 있다.
나발(螺髮)의 머리 중앙에는 중앙 계주(中央髻珠)를 표현하였으며, 비만형의 얼굴은 이목구비가 단정하게 묘사되었다. 그러나 칼로 빚은 듯 좁고 우뚝한 코와 치켜 올라간 눈, 꼭 다문 작은 입과 군살 진 턱의 조형으로 생경한 느낌을 자아낸다. 목에는 굵은 띠 모양의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직사각형의 불신(佛身)은 일면 당당해 보인다. 하지만 신체 굴곡이 무시된 채, 밋밋한 가슴과 통견(通肩)의 법의에 무의미하게 반복된 평판적인 옷주름으로 인하여 생동감을 잃고 있다. U자형으로 트인 가슴의 옷깃 사이로 타원형의 내의(內衣, 또는 裙衣) 끝단과 이를 단정하게 묶은 띠 매듭이 드러나 있다. 특히 왼쪽 어깨에서 한 번 접혀 내려오다 가슴의 옷깃 속으로 법의 자락을 여며 넣는 착의법(着衣法)은 특징적이다.
세장(細長)한 두 손은 가슴 근처에서 각각 들어 엄지와 중지를 굽혀 거의 맞대고 있어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중품하생인(中品下生印)을 연상시킨다.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무릎 밑으로 흘러내린 법의 자락은 양 무릎 밑에서는 톱니형으로, 발목 밑에서는 부채꼴로 주름져 마무리되었다. 특히, 발목 밑의 부채꼴 옷주름은 고려시대 철불의 형식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조성 시기는 고개를 숙여 움츠린 듯한 상의 자세와 경직된 얼굴 모습 그리고 균형을 잃은 신체 비례와 판에 박은 듯 일률적으로 나열된 평판적인 옷주름 등으로 보아 조선시대 초기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