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9년(숙종 25년) 작. 비단 바탕에 채색. 중앙의 아미타설법도와 좌우 권속들의 그림 등 모두 3폭이 1조를 이루고 있다. 아미타설법도는 세로 295㎝, 가로 172㎝, 좌우 권속도는 각각 세로 290㎝, 가로 133.5㎝이다. 원래는 극락전에 봉안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부식이 심하여 따로 보관하고 있다.
아미타불과 8보살·제석(帝釋)·범천(梵天), 6구의 타방불(他方佛), 사천왕(四天王), 비구승 14인 등의 인물들을 세 폭에 나누어 그린 형식은 무량사아미타극락회상도(無量寺阿彌陀極樂會上圖, 1633년 작)와 비슷하다. 하지만 중앙의 아미타도 좌우에 관음보살도와 대세지보살도를 각각 그려 넣어, 아미타삼존을 중심으로 청문중(聽聞衆)을 배치한 점이 서로 다르다.
중앙의 아미타설법도는 높은 대좌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8보살과 타방불 2구가 묘사되었다. 주형(舟形)의 거신광배(擧身光背)를 지닌 아미타불은 머리 위에 높은 육계(肉髻)가 솟아 있다. 그리고 정상 계주(頂上髻珠)와 중앙 계주가 뚜렷하게 표현되었다. 얼굴은 사각형에 가깝고 신체 또한 사각형적인 형태를 보여 준다.
통견(通肩)의 법의(法衣) 가운데로 보이는 가슴을 가로지른 내의의 띠 매듭이 옷 속에 감추어진 채 대좌 아래로 늘어진 점은 조선시대 불화의 특징적인 한 모습이다.
아미타불의 좌우에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시립하고 있다. 관음보살은 화불(化佛)이 그려진 높은 보관을 쓰고 왼손에는 정병(淨甁)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천의 자락을 잡았다. 대세지보살은 연꽃을 들고 있다. 그런데 이 두 보살의 치마에 표현된 톱니 모양의 옷 장식은 회암사약사삼존도(檜巖寺藥師三尊圖, 1565년 작)의 문양과 비슷하여 주목된다.
권속들이 묘사된 좌우 그림에는 도포식의 옷을 입은 범천과 제석천, 칼을 든 지국천(持國天), 비파를 든 다문천(多聞天), 여의주(如意珠)와 용을 잡고 있는 증장천(增長天), 보탑(寶塔)과 화살을 든 광목천(廣目天) 등 사천왕이 그려져 있다.
이 불화의 색채는 조선시대 초기의 다른 불화에 비하여 전체적으로 호분(胡粉 : 흰 가루)이 많이 섞여 두텁고 탁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차분하고 밝은 중간 색조의 홍색(紅色)과 녹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화기(畫記)에 의하면 의균(義均)을 비롯한 4인의 화원이 제작하였다고 한다. 의균은 이 밖에도 1703년(숙종 29년)에 또 다른 아미타극락회상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와 1707년 파계사(把溪寺)의 영산회상도(靈山會相圖)를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