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3년(숙종 29년) 작. 세로 307.5cm, 가로 244cm. 비단 바탕에 채색.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의균(義均) 등의 화원에 의하여 제작되었다. 이 그림은 대구 동화사 아미타여래회도와 작자가 같은 점에서도 흥미롭다.
1699년 작과 비교하여 완전한 원형 구도를 이룬 점이라든지 포(布)가 비칠 정도로 엷게 채색한 밝고 부드러운 중간 색조에 가늘고 활달한 필선이 드러나 보이는 등 더욱 숙달된 경지를 보인다.
또한 아미타여래와 6보살만 등장하는 아미타7존도의 형식은 이 불화 외에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는 희귀한 예이다. 이 밖에도 사천왕(四天王)을 비롯한 청문중(聽聞衆) 등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점도 특이한 양식이다.
1699년 작처럼 중앙의 아미타설법도 좌우에 청문중을 별도의 화폭으로 제작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권속들은 지물(持物)로 미루어 보아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금강장보살과 제장애보살이 각각 짝을 이루고 있다고 추정된다. 아미타불화에 반드시 등장하는 지장보살이 7존 형식에서는 표현되지 않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원형 두광과 신광을 지니고 낮은 대좌에 앉은 아미타불의 머리 모양은 뾰족한 육계(肉髻)에 둥근 정상 계주만 표현되었다. 이는 1565년(명종 20년)에 조성된 '회암사'명 약사여래삼존도('檜巖寺'銘 藥師如來三尊圖)의 본존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W자형의 이마 윤곽선에 八자 문양이 나타난 사각형적인 얼굴, 신체 각 부분이 평면화된 각진 방형 구성 등으로 굴곡이라든가 둥근 맛은 사라졌다.
화불(化佛)을 모신 보관을 쓴 관음보살은 보병을 얹은 연꽃줄기를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대세지보살은 경책(經冊)을 얹은 연꽃가지를 잡고 있다.
드러난 가슴에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비스듬히 띠로 묶어 내린 착의법(着衣法)은 '도갑사'명 관세음보살삼십이응신도(일본 京都 知恩院 소장, 1550)를 계승한 것이다. 전신에 치장하던 화려한 영락(瓔珞 : 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이 번잡한 옷 무늬로 대치된 것도 알 수 있다.
붉은색과 녹색은 17세기 불화에 비하여 점차 짙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아미타불의 머리에 밝은 하늘색을 사용한 점은 1459∼1493년 작인 남양주 수종수 금동불상과 유사하다.
보살의 머리 모양이라든가 착의 수법 등이 1550년 작 '도갑사'명 관세음보살삼십이응신도와 비교되는 점, 낮고 단순한 보관 장식은 변모되었지만 고려 불화의 것을 닮은 점 등 앞선 불화를 재현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이는 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