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7세기 몇 차례의 전란 이후 국가는 전후 복구책의 일환으로 황무지를 개간하고 이를 특정 기관 소속의 재원인 둔전으로 삼는 조치를 추진하였다. 둔감은 둔전의 실질적인 경영과 지대 수취를 담당하는 직임이었다.
이들은 둔전감관 · 별장 · 둔전관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었다. 일반적으로 군사적 임무를 수행하는 이들은 별장으로, 그렇지 않은 이들은 감관으로 지칭되었는데, 감관이 보다 보편적이었다. 둔전이 많이 설치된 서남해 도서 지역은 지방관이 충분히 배치되지 않았기에, 둔감이 사실상 지역 행정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둔감은 대체로 양반층은 아니지만 경제력을 갖춘 부민(富民)으로 구성되었는데, 관권(官權)과 결탁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둔감은 경우에 따라 급료를 받기도 하였으나, 그보다도 지대의 수취 · 상납 과정에서 상당한 경제적 이득을 차지하였다. 그러므로 둔감의 직임은 매매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둔감의 일부는 둔전의 확보나 개간 과정에 일정하게 기여하였다. 그 결과 둔감들은 둔전의 권리에 대한 지분을 가지고 중답주(中畓主)로서 둔전 경영의 주도적인 위치를 점하기도 하였다. 둔감의 휘하에는 둔감의 활동을 보조하는 마름[舍音]이나 둔장(屯長) 등이 배치되어 실무를 맡아 보기도 하였다.
17세기 후반 이후에는 대외정세가 비교적 안정되며 둔전 경영에 있어서 군사적 의미가 크게 퇴색하였다. 둔감들도 점차 별도의 군직(軍職)을 띠지 않는 사인(私人)들로 구성되는 변화가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둔감은 둔전의 관리와 관련하여 경제적 이익 확보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고, 이들의 이익 추구 활동은 사회적 지탄을 받기도 하였다.
둔감을 파견하는 일은 각 기관이 독자적으로 토지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등장하였다. 둔감의 파견과 이로부터 말미암은 문제점은 이 시기 국가 재정이 중앙의 통제 하에 일관되게 운영되지 못하고 각급 기관에 의해 할거적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하나의 증거이다. 국가의 둔전에 대한 시책도 둔감을 어떻게 통제하느냐의 문제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둔감은 다른 한편으로 전란과 재해로 발생한 유민(流民)들을 안집하고 황무지를 개간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들은 또한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벽지(僻地)의 행정을 담당하며 지방 사회의 안정에 일정하게 기여하기도 하였다. 국가가 파악하지 못하는 토지와 백성을 다시 국가의 통치하에 귀속시키는 핵심적인 임무를 담당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