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물 경제 체제에서 부세(賦稅)로 납부하는 물종은 고정되어 있었다. 전세(田稅)의 경우 논에서는 쌀, 밭에서는 콩을 거두도록 하였다. 대동세(大同稅)의 경우 논밭을 구분하지 않고 바다 인근 지역에서는 쌀, 산군(山郡)에서는 포목(布木)이나 화폐를 수취하였다. 환곡 역시 지역에 따라 곡물이 지정되어 있었고 환곡 때 받은 것과 같은 종류의 곡물을 마련하도록 규정되었다.
그러나 흉년이 들어서 정해진 작물을 수확하지 못하게 되면 다른 물종으로 납부하는 대봉(代捧)이 취해졌다. 대봉은 흉년에 민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의 하나로서 각 군현에서 민의 사정을 고려하여 대봉을 요청하면 중앙에서 검토하는 과정을 거쳐 시행되었다.
정부에서는 지역에서 일어날 폐단이나 군인의 급료, 서울의 미곡 수급 문제 등을 고려하여 대봉 허용에 신중을 기하였다. 전세는 국가 재정의 기본이 되므로 원칙적으로 대봉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동미(大同米)는 공가(貢價)로 지급되었기에 동전으로 대체될 경우 도성민이 양곡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군포(軍布)는 중앙 군문에 속한 군인들에게 급료로 주었는데 역시 다른 물종으로 지급받을 때에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었기에 쉽사리 대봉을 택할 수 없었다.
대봉은 부세 감면이 제한되면서 흉년에 민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법으로서 차츰 그 비중이 커져갔다. 전세의 대봉은 제한적이었지만 지역에서 진휼곡 부족을 이유로 화폐납을 요청하여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었다. 대동 · 군포의 대봉은 보다 빈번하게 실시되었으며 동전 유통에 따라 이전대봉(以錢代捧)이 증가하였다.
환곡 역시 당년에 바쳐야 할 ‘신환(新還)’의 납부 기한을 미뤄주는 조치가 제한됨에 따라 대봉이 자주 이루어졌다. 환곡의 경우 동전뿐 아니라 민이 분급받은 곡물과 다른 종류의 곡물을 납부하는 것 역시 대봉이라고 불렀다. 환곡 대봉은 곡물의 종류에 따라 교환 비율이 규정되어 『속대전(續大典)』에 명시되었으나 화폐로 대신 납부하는 경우에는 관행에 따르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