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책. 필사본. 저자의 아들 만용(萬容)과 손자 중기(重箕) 등이 편집한 것이다. 권두에 송시열(宋時烈)의 서문이 있고 발문은 없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제1∼4책에 시 1,706수, 제5·6책에 소차(疏箚) 24편, 계사(啓辭) 5편, 제(題)·발(跋) 3편, 제문 68편, 제7책에 연행(燕行) 때 지은 시 458수가 수록되어 있다.
시는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저자의 특출한 재능을 보여준다. 그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1647년(인조 25)부터 1661년(현종 2)까지 세 차례에 걸쳐 청나라에 사신으로 내왕하면서 지은 기행시(紀行詩) 458수로서, 그 자체가 하나의 연행록을 이루고 있다.
그 다음으로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만사(輓詞)인데, 왕족·대신·문인 및 그 부인들의 죽음을 애도한 시이다. 이 중 「영창대군천장만(永昌大君遷葬輓)」은 처참하게 죽은 그의 짧은 일생을 애절하게 그린 것으로 만사의 대표작이다. 부인들에 대한 만사가 많은 것은 부마로서 당시 궁중과 귀족사회에서 차지하고 있었던 그의 위치를 말해준다.
이것은 그의 제문에서도 나타나는데, 이행원(李行遠)·김육(金堉)·이시백(李時白)·인평대군(麟坪大君)·남이웅(南以雄)·홍명하(洪命夏)·김좌명(金佐明) 등 당시의 대신·공신·문인들에 대한 많은 제문이 그의 교제범위를 보여준다.
그의 시는 천부적인 재능으로 말미암은 것이기도 하였지만, 부마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겸허하게 처신하여 많은 문인·학자들과 교제하면서 화답하는 가운데 더욱 원숙한 경지에 이른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