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비승(丕承). 경상도 삼가(三嘉) 출신으로 평소 효행으로 이름이 있었다.
어느날 노비들이 반심을 품고 무리를 지어 밤을 틈타 문계달의 집에 돌입하여, 아버지를 칼로 찔러 죽이고, 자신까지 죽이려 할 때 도둑의 손을 결박하여 위기를 면하였으나 반노들은 모두 도망하였다.
그 뒤 7년 동안 삼베옷을 입고 원수를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강원도에서 적노 13명을 잡았으나 기운이 다하여 운명하였다. 1653년(효종 4) 8월 그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국왕의 전교(傳敎)로 효행을 드러내어 표창할 만하다 하여 정려를 세우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