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기호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후기 홍경래의 난과 관련된 의사(義士).
이칭
양오(養吾)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811년(순조 11)
본관
남평(南平,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
관련 사건
홍경래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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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홍경래의 난과 관련된 의사(義士).
개설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양오(養吾).

생애 및 활동사항

1811년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일어나자, 의주부윤(義州府尹)에게 스스로 정주에 들어가 난군(亂軍)을 초유(招諭)해보겠다고 자청하였다. 부윤은 그 뜻을 장하게 여겨 전마(戰馬)와 전포(戰袍)를 주었다.

진(陣)을 출발하여 나정록(羅正祿)과 함께 정주성에 들어가 홍경래를 설득하려다가 오히려 살해되고 말았다. 의주의 학봉사(鶴峯祠)에 제향 되었다.

참고문헌

『의주읍지(義州邑誌)』
집필자
박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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