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장경(長卿). 1507년(중종 2) 박경(朴耕)·김공저(金公著) 사건에 관련되어 박원종(朴元宗)·유자광(柳子光) 등 간신을 몰아내려 하다가 오히려 남곤(南袞)·심정(沈貞) 등에게 고발당하여 주모자인 박경·김공저 등은 사형되고 여기에 가담한 조광조(趙光祖) 등과 신문을 받았으나 깊은 혐의가 없어 석방되었다.
그 뒤 1511년 생원으로 별시 문과(別試文科)에 3등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가 되고 이어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1520년 도사(都事)를 거쳐 공조정랑이 되었다. 이듬해 형조정랑이 되었는데, 김호(金瑚)·최인수(崔仁壽) 등과 사헌부로부터 육조에 합당하지 않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았으나 왕의 비호로 무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