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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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도(신윤복 작)
미인도(신윤복 작)
회화
개념
용모가 아름다운 여성의 자태를 그린 인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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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용모가 아름다운 여성의 자태를 그린 인물화.
개설

넓은 의미에서 사녀도(仕女圖) 또는 여사인물도(女仕人物圖)도 포함된다. 그림의 내용은 단체의 행동을 나타낸 궁녀출궁도(宮女出宮圖), 시녀출영도(侍女出迎圖), 유희도(遊戱圖)를 비롯하여, 황후도(皇后圖), 황비도(皇妃圖), 왕비도(王妃圖), 현부도(賢婦圖), 궁녀도(宮女圖), 귀비도(貴妃圖), 열녀도(烈女圖), 창녀도(娼女圖) 등 초상화의 성격을 띠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내용

동양화에 있어서 미인도는 중국 한나라 때 유향(劉向)이 쓴 『열녀전(烈女傳)』 을 후세 사람들이 그림으로 그린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현재 작품으로는 한나라 때의 「아황녀영도(娥皇女英圖)」, 진(晉)나라의 고개지(高愷之)가 그렸다고 하는 「여사잠도권( 女史箴圖卷)」(대영박물관(大英博物館) 소장), 송나라의 원청(袁靑)이 그린 「정귀인탄곡항비파도(丁貴人彈曲項琵琶圖)」 등이 남아 있어 동양화에서 일찍부터 미인도가 발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나라 때는 미인도가 매우 성행하여 위지을승(尉遲乙僧), 오도자(吳道子), 주방(周昉) 같은 미인화가가 유명하였다. 특히 주방은 귀족들의 생활을 소재로 하여 건강한 육체미, 풍만한 자태를 잘 표현하여 당시 사람들이 ‘농려풍비(穠麗豊肥)’라고 칭하였다. 그는 당나라 때의 가장 걸출한 미인화가였으며, 대표작으로는 「양귀비가설의녀란쌍육국도(楊貴妃架雪衣女亂雙陸局圖)」가 전한다. 당나라 때는 서역(西域)의 영향을 받아 서역풍의 미인도도 성행하였는데 위지을승이 대표적인 화가이다. 오대(五代)에는 고굉중(顧閎中), 주문구(周文矩) 등의 미인화가들이 유명하였고, 송나라 때는 이공린(李公麟), 휘종(徽宗) 등이 대표적인 미인화가였다.

명나라 때는 구영(仇英), 당인(唐寅), 진장후(陳章侯) 등이 오생파(吳生派)라는 미인화파를 형성하여 이때부터 미인화가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청나라 때의 개기(改琦)와 비단욱(費丹旭) 등은 서양화의 명암 화법으로 미인도를 그려 고답적인 고대 미녀화법을 타파, 더욱 입체적이고 정교한 미인도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의 미인도는 초상화적인 면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미인도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조선 중기 이후 풍속화(風俗畫)에서부터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김홍도(金弘道), 신윤복(申潤福), 채용신(蔡龍臣) 등을 들 수 있다. 김홍도는 풍속적인 미인도와 자태적인 미인도를 그렸다. 신윤복은 해학적이고 춘의적인 미인도를, 채용신은 초상화적인 미인도를 주로 그렸다.

이 가운데 신윤복의 「미인도」(간송미술관 소장)는 전형적인 조선 후기의 여인을 그린 것이다. 단아한 모습과 맑고 고운 눈, 붉고 매혹적인 입술, 약간 비껴선 아름다운 자태 등에서 당시의 살아 있는 미인을 직접 대하는 듯하다. 채용신의 「운낭자이십칠세상(雲娘子二十七歲像)」(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은 피부가 지닌 육리문(肉理文)을 근거로 하면서 안면의 실체감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어 그의 독특한 초상화 기법을 보여 주고 있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김은호(金殷鎬)가 섬세한 미인도를 남기고 있다. 대체적으로 우리나라의 미인도는 중국의 전통적인 미인도와는 달리 해학적이고 유머있는 미인도라는 점이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미인도를 그리는 화법은 일반 정물화와는 달라서 자태를 중요시하여야 하며 신운(神韻)이 아름다워야 한다. 자태에는 움직이는 자태, 앉아 있는 자태, 서 있는 자태, 누워 있는 자태 등이 있다. 미인도의 자태를 잘못 그리거나 염법(染法)을 잘못하면 오히려 연극배우의 분장이나 창녀의 자태가 되기 쉽다. 그러므로 고대의 화법을 잘 터득하여야 당대(當代)의 초상화나 사녀도를 잘 그릴 수 있다.

미인도에서는 고대의 화법을 사전체(史傳體)라 하고 현대의 화법을 풍시체(風詩體)라 한다. 두 가지 다 신운이 나타나야 한다. 또한 미인도에는 신태(神態)의 발정이 있어야 하고 풍운(風韻)이 있어야 한다. 미인의 풍운은 자태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교태(嬌態)는 금물이며 오히려 풍운을 해치게 된다. 그러므로 발정에서 오는 내태(內態)와 미모에서 오는 외태(外態)를 잘 배합하여 그리는 것을 중요시하였다. 또한 미인화에서 배경을 그릴 때는 반드시 사시(四時)와 인물의 지위에 따라 다르게 그려야 함을 원칙으로 하였다. 설색(設色)은 간결하고 깨끗하게, 옷주름 무늬는 고아(古雅)하게 표현해야 뛰어난 작품으로 간주되었다.

참고문헌

『한국초상화』(국립중앙박물관, 1979)
『동양화론』(김종태, 일지사, 1978)
『論中國人物畵』(方向, 黎明文化事業公司, 1977)
『人物畵譜大觀』三希堂畵譜(莫厘山人 編, 中華畵館,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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