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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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희
김만희
공예
개념
민화를 전문적으로 그리는 일 또는 그 일에 종사하는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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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민화를 전문적으로 그리는 일 또는 그 일에 종사하는 장인.
내용

1996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화가들 중에 가장 천하게 여겨져 온 사람이 민화가였다.

6·25 이후까지도 민화장들은 겨울철이면 시골마을이나 장터를 무대로 괴나리봇짐에 간단한 필구와 물감을 준비하여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며 민화를 그려 주고는 대신 쌀이나 보리를 받아 짊어지고 동구밖을 떠나가곤 하였다.

16, 17세기경 왜적이 침입해 왔을 때, 양반들의 폐습과 착취로 사회가 부패하여 왜적의 침입을 초래하였다고 보아 서민들의 애국에 대한 의식이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실학사상이 새로이 도입되어 각종 문화 예술에 대한 새로운 부흥 운동이 일어나고 소설·판소리·가면극·민화 등이 발생하여 서민들도 예술을 할 수 있다는 자부심과 자신감이 솟아났다.

민화는 이런 분위기에서 발생하였으며, 그 양식과 화법에서도 종래의 풍속화와는 아주 다른 화풍을 창출하여 색채도 화법도 매우 달랐다. 민화의 색채는 마치 한국인들이 색동 저고리를 좋아하듯 한국인의 심성을 흡족하게 하는 색채이며 그 맛 역시 음악에 맛이 있는 우리의 서민 예술이다.

그러므로 민화는 모든 백성들이 향유할 수 있는 예술이기 때문에 그 소재에는 교과적인 의식이 숨어 있고, 길상적인 내용으로 서민이나 농부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따라서 민화는 한국인의 미의식과 조형 감각을 가장 뚜렷하게 표하는 예술로서 그들의 행복을 표현하였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즐거움과 낙천성을 표현하여 억압받는 민중들의 애환을 가면극처럼 풍자하면서 그려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민화는 일본 제국주의의 의식개조와 생활 패턴의 변화로 점점 소멸되기 시작하였고, 광복 후에는 경제의 발전과 과학 문명의 발달로 건축물의 개조가 진행됨에 따라 생활공간 역시 달라짐으로써 점점 퇴화되었으며, 또 서구 문명하에 미국인의 생활 방식으로 현대화가 진행되어 한국 전통문화가 소멸됨에 따라 민화도 공동운명체적인 길을 따라가게 되어 지금은 거의 소멸되었다.

현재 민화장의 기능보유자로는 김만희(金萬熙)가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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