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내서(乃恕), 호는 국파(菊坡). 효행으로 감찰(監察)에 추증된 민수(閔銖)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동래정씨(東萊鄭氏)로 정잠(鄭潛)의 딸이다. 임헌회(任憲晦)·기정진(奇正鎭)을 일생 흠모하였으나 직접 사사하지는 못하였다.
효우(孝友)가 지극하여 부모를 잘 섬겼고, 상을 당하여는 3년을 하루같이 성(誠)과 예(禮)를 다하였고, 또한 자식과 조카들을 가르치는 데 학문보다는 실천을 위주로 지도하였다. 마을에서는 공경과 은애(恩愛)를 병행하여 많은 사람이 추앙하였다.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청빈을 즐기면서 『소학』과 『가례』를 연구하여 실천에 힘썼다. 선조의 제의(祭儀)를 확정하여 시행에 편의를 도모하였고, 할아버지의 유사(遺事)를 모아 실록으로 남겼다. 저서로는 『국파유고(菊坡遺稿)』 2권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