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군옥(君玉). 민유건(閔有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민자(閔鎡)이고, 아버지는 민창주(閔昌周)이며, 어머니는 이구(李絿)의 딸이다.
1723년(경종 3) 진사시에 합격, 1727년(영조 3) 증광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같은 해 함경도도사에 부임하여 당시 왕이 탕평책을 실행하기 위하여 노론의 거두들의 세력을 꺾자, 노론으로서 소를 올려 김일경(金一鏡)·목호룡(睦虎龍)의 잘못을 지적하였다. 1733년 장령(掌令)이 되었다. 1734년 이전에 상소한 것 등으로 왕과 대간의 미움을 사 파직되었다.
이듬해 복직되어 장령을 다시 역임하였다. 1742년 헌납(獻納)이 되었는데, 이때 국가의 진휼책(賑恤策)과 무신 등용에 관한 대안을 상소하여 이를 실현하게 하였다. 그 뒤 주로 사헌부에서 장령과 헌납을 여러 번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