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진경(震卿). 민근(閔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민광욱(閔光煜)이고, 아버지는 민형중(閔衡重)이며, 어머니는 안진(安瑱)의 딸이다.
1705년(숙종 31)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다음 해 지평이 되었는데 이때 궁중에 국청(鞫廳)이 열리자 소를 올려 입시승지(入侍承旨)와 주서의 책임소재를 논하여 파직을 주장하고, 사헌부의 강력한 직책상의 소임을 다하였던 일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707년 헌납(獻納) 유봉휘(柳鳳輝)의 지적을 당하여 충청도사로 있던 중 삭탈관직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