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제(朴根悌)의 본관은 진원(珍原), 자는 입보(立甫), 호는 옥현(玉峴)이다. 전라남도 보성(寶城) 출신으로, 아버지는 왕세자 사부 박광전(朴光前)이다. 가학(家學)으로 학문이 깊어 ‘남주고사(南州高士)’라 칭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아버지를 따라 형 박근효(朴根孝)와 함께 전라좌의병에 속하여 활동하였으며, 개령 · 성주 등지를 수복하는 데 공을 세웠다. 군공으로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상소를 올려 나아가지 않았다.
정유재란 당시에는아버지가 의병장으로 추대되자 종사관으로 출전하였다. 아버지가 1597년 11월 18일 진중에서 순절할 때까지 수행하였다. 종전 후 은거하며 살다 1629년 사망하였다.
아버지 박광전, 형 박근효와 함께 의병 활동에 참전하였다고 하여 '삼부자창의(三父子倡義)'라 칭하였다. 또한, 병자호란 당시에는 박근효의 장남 박춘수(朴春秀), 차남 박춘장(朴春長), 박춘장의 아들 박진형(朴震亨), 박근제의 아들 박춘호朴(朴春豪) 등 4현이 의병운동에 참여하여 일문(一門)에서 칠현거의(七賢擧義)가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