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아버지를 따라 동생 박근제(朴根悌)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전라좌의병의 참모관으로 출전하여 개령 · 성주 등지를 수복하는 데 공을 세웠다. 1593년 2차 진주성전투에 참전할 당시 군량 공급을 담당하였다. 전라좌의병의 부장(副將) 장윤(張潤)이 진주성이 함락되면서 전사하였는데, 박근효는 외원 중에 미처 진으로 돌아오지 못하여 함께 죽지 못한 것을 한탄하였다. 군공으로 내려진 관직에도 나아가지 않았다. 정유재란 때도 아버지와 함께 의병 활동을 하였다. 1607년 사망하였고, 사헌부 집의(執義)에 추증되었다.
아버지 박광전, 동생 박근제와와 함께 의병에 참전하여 '삼부자창의(三父子倡義)'라 칭하였다. 또한 병자호란 당시에는 박근효의 장남 박춘수(朴春秀), 차남 박춘장(朴春長), 박춘장의 아들 박진형(朴震亨), 박근제의 아들 박춘호(朴春豪) 등 4현이 의병운동에 참여하여 일문(一門)에서 '칠현거의(七賢擧義)'가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