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원(朴承源)은 1562년(명종 17) 전라남도 영암에서 태어났다. 자는 계유(季悠), 호는 설파(雪坡), 본관은 함양(咸陽)이다. 오한(五恨) 박성건(朴成乾)의 현손(玄孫)이며, 녹야당(綠野堂) 박대기(朴大器)의 둘째 아들이다. .
임진왜란 당시 아버지와 형 박장원(朴長源)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고경명 의병과 함께 활동하였다. 고경명이 순절하자 그 아들 고종후와 함께 활동하였다. 정유재란 때에는 같은 고을의 임환(林懽)과 창의하여 족제(族弟) 박근이(朴謹已), 임게(林垍), 이정조(李廷祚)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순천왜교성전투(順天倭橋城戰鬪)를 전후하여 통제사 이순신이 고금도에 진을 치고 있을 때 군량을 공급하는 계원도유사(繼援都有司)로 활동하였다.
1624년 이괄의 난 때는 족질(族姪)인 조행립(曺行立), 신여의(愼汝誼)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군사와 군량을 모았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가 화친하였다는 소식에 통곡하며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후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거부하고 칩거하였다. 호조참판에 추증되었다.
효종 대에 송시열과 송준길이 박승원이 삼란 당시에 창의한 전후 사실을 아뢰었고, 그 후손인 박수성(朴壽聖)을 금부도사에 제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