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군극(君極), 호는 무은(霧隱). 아버지는 증참판(贈參判) 박검종(朴儉宗)이다.
용맹이 있고 궁마(弓馬)에 능하여 무과에 급제한 뒤 첨절제사(僉節制使)가 되고 사을고지(沙乙古池)에서 용마(龍馬)를 획득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때 공을 세워 정사공신(靖社功臣) 1등에 녹훈되었다.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 때 원수 장만(張晩)의 참모로 왕이 공주로 파천(播遷)하였을 때 옥쇄를 잘 보관하여 공주 행재소(行在所)까지 도착한 공으로 진무공신(振武功臣) 2등에 녹훈되었으며, 중추부사(中樞府事)로 승진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으나 화의(和議)가 성립되자 통곡하면서 시를 지어, 구차하게 사는 것은 남아가 할 일이 아니며 삼학사(三學士)를 따르지 못한 것이 부끄럽고 한스러울 뿐이다고 하였다. 그 뒤 노비와 녹권(錄券)이 하사되고 내금장(內禁將)에 제수되었으나 출사(出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