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중 ()

박세중 가전 고문서 중 정사공신 녹권과 진무공신 녹권
박세중 가전 고문서 중 정사공신 녹권과 진무공신 녹권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시대 첨절제사, 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군극(君極)
무은(霧隱)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밀양(密陽)
주요 관직
첨절제사|중추부사
관련 사건
인조반정|이괄의 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시대 첨절제사, 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군극(君極), 호는 무은(霧隱). 아버지는 증참판(贈參判) 박검종(朴儉宗)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용맹이 있고 궁마(弓馬)에 능하여 무과에 급제한 뒤 첨절제사(僉節制使)가 되고 사을고지(沙乙古池)에서 용마(龍馬)를 획득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때 공을 세워 정사공신(靖社功臣) 1등에 녹훈되었다.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 때 원수 장만(張晩)의 참모로 왕이 공주로 파천(播遷)하였을 때 옥쇄를 잘 보관하여 공주 행재소(行在所)까지 도착한 공으로 진무공신(振武功臣) 2등에 녹훈되었으며, 중추부사(中樞府事)로 승진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으나 화의(和議)가 성립되자 통곡하면서 시를 지어, 구차하게 사는 것은 남아가 할 일이 아니며 삼학사(三學士)를 따르지 못한 것이 부끄럽고 한스러울 뿐이다고 하였다. 그 뒤 노비와 녹권(錄券)이 하사되고 내금장(內禁將)에 제수되었으나 출사(出仕)하지 않았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
『호남지(湖南誌)』
집필자
박정자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