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정월 보름날 전후로 3일간 밤에 동서 양편이 겨루는 남성집단놀이이다. ‘박시놀이’ 또는 ‘박시’ 등으로도 불린다. 기원이나 발생연대는 알 수 없으나 거의 매년 연중행사로 거행되어 왔다. 이 놀이의 대장 격인 완력이 세고 기량이 능한 자를 ‘박수’라고 부르는데, 그 음이 변하여 놀이명칭인 ‘박시’로 고정된 듯하다.
군위읍의 남북으로 트인 길을 경계로 하여 생긴 자연촌락인 동부와 서부의 청장년이 양편으로 패를 나누어 싸우는데, 한 편의 놀이꾼이 100명 가량 된다. 힘쓰기에 자신이 있는 건장한 남자면 누구든 참가한다. 먼저 정월 초순에 동리의 아이들이 때때로 ‘애기 박시’를 싸우게 되고, 차츰 발전하여 ‘어른 박시’로 변한다.
놀이방법은 먼저 농악대가 마을을 두루 돌며 청장년을 소집하면, 곧 뭉쳐 싸울 태세를 갖춘다. 서부군이 골목의 진지를 틈 없이 빽빽이 메워 적의 침투를 막는다. 동부군이 몰려와서 팔짱을 끼고 어깨로 적을 밀어붙이면서, 미는 쪽과 밀리는 쪽의 격렬한 밀기 싸움이 벌어진다. 이때 양 패의 농악대는 요란하게 응원을 하고, 서부군은 혹 진지가 무너질 것을 염려하여 20∼30보 뒤에 제2진을 배치하여둔다.
앞장선 머리꾼이 적진의 중앙을 뚫고 헤쳐나가면 전원이 힘껏 밀어 중앙을 관통해나간다. 이 때 농악대도 뒤쫓아 관통해나가야 승리하게 된다. 이 싸움을 ‘골목 박시’라고 한다. 패한 쪽은 곧 다시 뭉쳐 이번에는 동부군 쪽으로 쳐들어간다. 동부군은 곧 회군하여 진지를 구성하고 적을 맞이한다. 이렇게 두 마을에서 한 번씩 싸우고, 이 싸움이 끝나면 대개의 경우 흥이 돋우어지고 격하게 되어 신작로에서 패싸움이 벌어지는데, 이것을 ‘난장 박시’라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박시에 승리한 마을에는 풍년이 든다고 한다. 진취적이고 격렬한 남성적 의전(擬戰)으로, 풍년이 든다는 속신 등으로 보아 다분히 농경 예축의례(豫祝儀禮)의 성격이 농후하다. 또한 머리꾼이 팔짱을 낀 팔꿈치와 어깨로 밀고 들어가는 방법이 동채싸움·가마싸움·나무쇠싸움 등의 놀이와 비슷하여, 이들 사이에 전파 변용의 가능성도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