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정월 14일 밤중에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빌며 동제사를 지내던 동신당이다. 1993년 경상북도 민속자료(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간혹 거석유적(巨石遺跡)이라고도 하는 이 성황당은 서지리 마을입구 구릉 위에 위치하여 외부에서 이 마을로 들어오는 모든 상황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우뚝 솟아 있다.
주변은 야산으로 숲이 울창하고, 종래의 진입로도 변경되어 한적한 곳이다. 큰 자연석 세 개를 쌓아 올린 삼첩석(三疊石) 1기, 두개를 쌓아 올린 이첩석 1기, 모자처럼 생긴 모관석(冒冠石) 1기, 주먹보다 큰 돌들을 모아 쌓아올린 돌무더기 1기가 20평 남짓한 평지에 모여 있다. 돌무더기가 동신의 신체인 성황당이다.
조선 만력연간(萬曆年間)에 간행한 《영가지 永嘉誌》 고적조에 의하면 “삼첩석. 부사(府司)의 문안에 있다. 형태는 보릿짚 삿갓과 같다. 세운 본래의 뜻은 알 수 없다. 단지 늙은 아전들이 전하기를 관리들의 번성하고 쇠퇴하는 것을 위해 세웠다고 하며, 또한 부기(府基)의 주맥(主脈:으뜸이 되는 줄기)을 누르기 위한 것이라 한다. 이를 건드리는 사람은 반드시 관재(官災 : 관가로부터 받은 재앙)를 당한다고 한다.”
“이첩석. 관청의 서쪽 담 모서리에 있다. 두개의 돌을 갈아서 서로 맞추어 겹쳐 쌓았다. 만들어둔 뜻은 알 수 없다. 그것을 만지면 관재를 면하기 어렵다고 한다.”는 기록이 있다. 대개 고개마루나 한길 옆, 촌락의 입구나 촌락의 한구석, 사찰의 입구에서 볼 수 있었던 작은 돌을 어지럽게 쌓아 올린 서낭당은 원시적인 사당인 동시에 그 제당이요, 신의 서식처이며 경계표였다.
거석(巨石)은 원래 마을의 허(虛)한 곳을 인위적으로 보완하는 비보물(裨補物)로써 관념되던 것이나 마을로 들어오는 악귀, 잡귀, 잡인을 막던 성황당과 동일한 곳에 존재한 것은 동일 유사한 신앙의 생각에서 생긴 신앙형태라 풀이할 수 있다. 이 성황당은 1950년대만 하더라도 마을 주민들이 음력 정월 14일 밤에 동제를 지냈으나 현재는 마을 홋수도 줄고, 생각도 변하여 지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