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상주(尙州). 할아버지는 판사재시사(判司宰寺事) 박문로(朴文老)이며, 아버지는 대제학 박안신(朴安臣)이다.
1417년(태종 17)에 식년 문과에 동진사로 급제하여 한림원(翰林院)에 보직되었다. 1420년(세종 2) 세자시강원주서(世子侍講院注書)로서 사관(史官) 안수사(安修巳)와 함께 의금부에서 국문(鞫問)을 받고 장(杖) 100대에 처하여졌다.
1426년 전라도에 감찰로 파견되어 조희정(趙希鼎)·양맹지(梁孟智)·이신(李伸)·문헌(文獻) 등이 재물을 감춘 것을 탄핵하였다. 1430년 4월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역임하고, 1434년 내자소윤(內資少尹)으로서 경기·황해도에 파견되어 진휼(賑恤: 가뭄이나 재해시의 구제)의 상황을 살폈다. 1443년 우부승지, 1445년 좌부승지를 역임하였다.
1447년 인수부윤(仁壽府尹)·공조참판·황해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450년 호조참판·평안도관찰사를 지내고, 이듬해 문종이 즉위하자 중추원부사에서 형조참판이 되어 평안도를 좌우로 나누어 각기 도절제사를 보내고, 강계(江界)와 삭주(朔州)에는 충성스럽고 용감한 인물을 보내기를 청하였다. 같은 해 경창부윤(慶昌府尹)·평안도감사가 되었고, 9월에는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갈 때 큰 장마를 만나 중도에 체류하게 되면 양곡이 다 떨어져 반드시 아사(餓死)하게 될 것이라는 종사관들의 의견을 수용하여 40말의 양곡을 더 가져간 것이 죄가 되어 돌아오는 길에 의주에서 붙잡히자 국법을 어긴 것을 뉘우치고 자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