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회중(晦仲), 호는 낙정(洛汀). 박정실(朴鼎實)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형조참의 박수홍(朴守弘)이고, 아버지는 박진환(朴震煥)이며, 어머니는 김선(金璇)의 딸이다.
1648년(인조 26)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54년(효종 5)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이 되고, 다음 해 전라도 암행어사가 되어 관리들의 비리와 민폐 시정에 진력하였다.
1660년(현종 1)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이 되어 당시 이도(吏道)의 문란에 대해 소를 올렸다. 특히 황주판관(黃州判官)인 조세환(趙世煥)의 비리를 지적하고 국강(國綱)의 해이를 일일이 거론하였다. 그 뒤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를 거쳐, 1668년 사간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소를 올려 당시 대사헌 박장원(朴長遠)과 함께 예속(禮俗)을 파괴한 사건을 중심으로 준엄한 정론을 전개하였다.
즉, 구례현감 이상직(李尙稷)과 군수를 지낸 이극화(李克和)의 두 가문이 혼인을 맺었다가 파기한 것이 예속을 혼란시키는 큰 죄가 되므로 이들에게 마땅히 벌을 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왕은 올바른 주장이라고 인정해 상소대로 시행하도록 명하였다.
또한 1772년에는 사직(辭職)의 소를 올리면서 영남 지방의 큰 폐해를 시정할 것을 건의하였다. 즉, 흉년으로 굶주리고 있는 백성들에게 마땅히 관곡을 풀어 대여해주는 것이 정부의 방침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실행되지 않는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전세(田稅)와 공물의 부담이 너무 지나치므로 이에 대한 시정책도 강구해야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박증휘의 건의는 당시 사회의 비리를 과감하게 파헤친 일면이며, 또한 예속의 문란을 바로잡고자 한 강직한 인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