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랑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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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작품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목차
정의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개설

1권 1책. 국문본. 1934년 대구 재전당(在田堂)서포에서 나온 활자본과 필사본이 있다. 이 작품은 박원형(朴元亨)의 후손인 박수하(朴壽河)의 두 딸의 효행을 적은 실화소설이다.

이 책의 출판에 있어서 원고는 문중의 남사(南沙)라는 사람이 썼지만, 상대방이 두려워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그러나 합천군 가야면(伽倻面) 출신의 박서산(朴瑞山)이라는 유명한 풍수가 대구의 여러 권력가들의 도움으로 책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이 때 상대방 후손이 이를 몽땅 사서 태워버렸기 때문에,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된 한 권만이 유일하게 전해지고 있다. 이 사실은 『성호사설』 권17에 실려 있다. 또한, 전후 경과와 각 도에 돌렸던 통장(通章) 및 이에 호응한 통문(通文) 등 관계 자료를 모아 엮은 『박효랑실기(朴孝娘實記)』 한문본 2책이 있다.

내용

박수하는 박원형의 10세손으로, 5대째 성주(星州) 땅에서 고적하게 살았다. 숙종 35년에 대구 사람인 청안현감 박경여(朴慶餘)가 박수하의 선산 바로 가까이에 자기 할아버지의 산소를 쓰려 하였다. 박수하는 권력에 눌려 말리지는 못하고, 고을의 원과 감사에게 제소를 하였다. 그럼에도 효력을 못 보자, 상경하여 격쟁(擊錚)을 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조사·선처하라는 시달이 있었으나 날짜를 끌어 해를 넘긴다.

박경여는 이에 아랑곳없이 묘역을 넓히고 석물을 갖추는 등 박수하 쪽을 완전히 무시한다. 박수하는 참다못해 상대방 하인을 잡아다 볼기를 때렸다가 백방으로 무소(誣訴)를 당한다. 또한 당시의 감사가 박경여의 인척이라서 고소장의 문구를 트집 잡아 혹독한 형벌을 가하는 바람에, 박수하는 옥중에서 목숨을 잃는다. 이에 큰 딸이 직접 나서서 무덤을 파내어 시체를 불구덩이에 던져버린다.

며칠 뒤, 박경여가 많은 인력을 이끌고 달려온다. 이 격투에서 큰 딸과 두 하인은 목숨을 잃는다. 이에 작은 딸이 남복을 차리고 상경하여 두 번이나 격쟁을 하지만 성과를 얻지 못한다. 그러자 그녀는 관리들의 행차마다 가로막고 매달렸고, 이 일이 장안에 널리 퍼진다.

이듬해 4월 안사(按使)가 내려와 사실을 조사하였으나, 조사기록이 하인들의 증언과 어긋나 윤5월 초삼일에 다시 검시하였다. 박수하는 복중에 죽어 땅 속에서 해를 넘겼는데도 상처가 분명하여 사실이 모두 밝혀지고, 두 딸에게 효녀 정문(旌門)이 내려진다.

참고문헌

「새로 밝혀진 실화고대소설 ‘박효랑전’ 경위」(이훈종, 『문호』5, 건국대학교국어국문학회,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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