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거제(巨濟). 아버지는 반조(潘慥)이다.
1469년(예종 1) 증광시(增廣試)에서 진사가 되었고, 1474년(성종 5)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486년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임명됐고, 1490년 이래로 성균관 관원으로 재직하면서 가르치는 데 명성이 있었다. 1493년에 조봉대부(朝奉大夫)에 올라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이 되었다.
그 이듬해에 전국각지의 명산대천에 기도하는 사신으로 뽑혀 양진(楊津)으로 파견되었다. 1495년(연산군 1)에 사간을 거쳐 대사성이 되고, 1504년(연산군 10)에 성균관동지사를 겸하였다. 이후 동지중추부사, 한성부의 좌윤·우윤, 사헌부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으로 정국공신 4등으로 녹권되고 이성군(利城君)에 책봉되었으며, 뒤에 기성군(岐城君)으로 개칭되었다. 또 같은 해 반우형이 학문에 밝으니 교회(敎誨)에만 전념하게 하자는 이조의 건의에 따라 대사헌에서 물러나 성균관 교육을 담당하게 되었다. 1519년(중종 14)에 기묘사화로 유배되었으며, 명종 때에 신원(伸寃: 억울하게 입은 죄를 풀어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