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10월 8일 충청북도 청주에서 배창근과 장희운 사이에서 출생하였으며, 1928년 결혼한 최순옥과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다. 부친은 대한제국 청주 진위대 하사로, 1907년 군대 강제 해산 후 의병운동에 참가했다가 체포되어 1909년 경성감옥에서 주1.
청주 청남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숭실중학교 재학 중이던 1917년에 장일환, 백세빈, 김형직, 강석봉 등과 대한국민회 조선지부를 결성하고 활동 중이었는데, 체포되어 10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월 함북 성진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고 9개월간 옥고를 치렀으며, 1923년 숭실전문학교 문과 재학 중 기독교농촌연구회를 조직하였다.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에 유학하여 1933년 시카고 매코믹신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와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산하 농촌부 총무가 되었다. 1937년 7월 총회 농촌부가 해산되자 이듬해 6월 미국으로 출국하여 프린스턴신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였다. 태평양 주2 중 미국무성 촉탁으로 근무하다가 1945년 11월 맥아더 사령부 통역관 자격으로 귀국하였다.
1948년 12월 미군 철수 때 미국으로 건너가 1951년 미네소타 매컬리스터대학에서 명예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귀국하여 대전에서 기독교연합봉사회를 창설하였고, 1953년 11월 대성교회를 설립하였다.
1957년 대전 기독교농민학원, 1962년 대전 기독교여자농민학원, 1967년 12월 경기도 일산 삼애농업기술학원을 설립하고 “하나님 사랑, 농촌사랑, 노동사랑"을 추구하는 기독교 농촌운동을 전개하다가 1968년 8월 25일 별세하였다.
저술로 『기독교와 농촌운동』(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1958), 영문 자서전 『Who shall enter the Kingdom of Heaven』(1951)의 번역본 『배민수 자서전: 누가 그의 땅에 들어갈 수 있는가』(연세대학교 출판부, 1999)가 있다.
1993년 부친 배창근과 함께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이 주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