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성신학교 이전에 이동수업을 하던 주1 시절(1900~1909년) 월간지로 간행되었던 『신학월보』를 계승하여 1911년 서울 서대문 밖 냉천동에 주2를 마련하고 협성신학교로 발전한 후 정식 주3로 1916년 2월에 창간되었다.
『신학세계』의 발행 겸 편집인 하디 교장은 간행 목적과 원칙을 1) 성경과 신학 연구 결과를 게재하여 조선 교인의 주4을 배양하고 주5의 지식을 증진시키며, 2) 국한문과 순한글을 섞어 편집하여 문학와 일반 사회에 보급하고, 3) 신학교 교수들의 논문을 주로 싣지만 일반 독자들의 기고문도 수록하며, 4) 순전한 종교잡지로서 정치에 관한 언론이나 평론은 수록치 않고, 5) 국내외 교회 소식도 소개하며, 6) 영업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대금을 최소화 하겠다고 밝혔다.
내용은 조직신학과 주6, 성경신학, 주7 등 신학 논문들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한국인 목회자와 졸업생, 재학생들의 논문이나 수필도 다수 실렸다. 감리교의 진보적 신학을 대변하는 잡지가 되었다.
계간지주9로 출발한 『신학세계』는 1918년 1월부터 주10으로 바뀌었다. 편집 주11)으로는 한국인 교수 양주삼과 조상옥, 최상현, 김인영, 정경옥 등이 맡았다. 1920년 9월 선교사 그로브가 기고한 ‘독립과 기도’란 글이 주12 검열로 인해 발매 중지 명령을 받기도 했다. 1940년 6월 감리교신학교가 강제 폐교된 후 『신학세계』도 1940년 8월 폐간되었다.
해방 후 1952년 10월 피난지 부산에서 가밀교신학교 교장 홍현설의 발행 및 편집으로 속간호를 낸 후 연 1회 발행하다가 1955년 11월 제30권 1호를 끝으로 더 이상 내지 못했다. 1975년 『신학과 세계』란 주13로 이름을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