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경여(景餘), 호는 낙천(洛川). 참봉 배사종(裵嗣宗)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로 박동선(朴東善)의 딸이다. 어려서 조식(曺植)에게 수학하였으나, 뒤에 이황(李滉)의 문인이 되었다.
1561년 진사시에 합격한 뒤, 1565년 관천(館薦)으로 남부참봉(南部參奉)에 제수되었고,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빙고별좌(氷庫別座)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572년에 동몽교관(童蒙敎官)이 되어 학도들을 가르쳤다. 그에게 종학(從學: 남을 쫓아서 배움)하는 사람이 많아서 강소(講所)에 다 수용할 수가 없었다.
이듬해 벼슬을 버리고 고향 현풍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으나, 노수신(盧守愼)·허엽(許曄) 등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해 겨울에 죽었다. 그의 스승인 조식이 죽었을 때 많은 문도 중에 천거되어 조명(朝命)으로 「남명선생행록(南冥先生行錄)」을 지어 올렸다. 뒤에 현풍도동서원(道東書院) 별사(別祠)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 『낙천문집』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