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장연(長淵), 호는 수정(水亭). 할아버지는 변영인(邊永仁)이고, 아버지는 변구수(邊龜壽)이며, 어머니는 박덕생(朴德生)의 딸이다.
1393년(태조 2)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벼슬이 참판에 이르렀다. 노비소송을 잘못 판결한 탓으로 1414년(태종 14)에 파직되었고, 그 이듬해에 상서사소윤(尙瑞司少尹)으로 다시 파직되었다. 1421년(세종 3)에 판정주목사(判定州牧事)가 되었으나 그 이듬해에는 양양부사(襄陽府使) 때에 뇌물을 받은 혐의로 사헌부의 규탄을 받았다.
그 뒤 훈련관제조를 거쳐 1433년 중추원동지사가 되고, 1436년에는 중추원부사가 되었다. 아내는 이원계(李元桂)의 딸로 맞았으나 홍로(洪魯)가 버린 아내이므로 사람들이 변처후를 가리켜 세력에 기대어 벼슬에 나아가 직임을 게을리한다고 비웃었다. 글씨도 잘쓰고, 문장에 능하여 당시 외교문서를 많이 작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