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8년(영조 4) 무신란(戊申亂)에 마병과 보병(步兵)에서 자원하여 출전하는 자로 마병초(馬兵哨) 1초(哨)를 만들어 도순무사(都巡撫使)에 예속시키고, 개선하면 그대로 무과에 합격시켜 좌전초(左前哨)에 충당한 뒤 이를 별기대라 불렀다.
훈련도감 마병은 총 7초 833인으로서 매초에 119인씩인데, 이 중 별기대는 101인이었다. 1778년(정조 2)부터 대조회(大朝會)가 있을 때는 파문갑사(把門甲士) 대신 별기대 28인이 기구와 복장을 갖추고 계(械)를 잡고 배호(陪扈)하도록 하였다. 또한, 집춘문(集春門)에서 공북문(拱北門)까지의 순라(巡邏) 및 남영(南營) 입직(入直)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