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조선 중기의 학자인 충재(冲齋) 권벌(權橃)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손자 석천공(石泉公)이 1608년(선조 41)에 건립하였으며, 1741년(영조 17)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丁자형 평면의 건물이 동남향으로 위치하여 있고, 와룡연(臥龍淵)이라 불리는 연못이 삼면에 둘러져 있으며, 연못과 정자 사이에는 초연대(超然臺)라는 이름의 바위가 있다.
평면은 중앙에 4통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양측에 각각 2통칸의 온돌방으로 두었는데, 좌측 온돌방과 그 전면 · 후면 및 좌측은 우측보다 한 단 높은 누마루형식을 취하고 있다. 기단(基壇) 전면은 2단의 자연석 허튼층쌓기이나 후면은 자연석과 장대석을 혼용하였고, 초석은 모두 자연석 덤벙주초이다.
기둥은 방으로 꾸며진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원주(圓柱)를 사용하였다. 구조는 주상에 주두(柱頭 : 대접받침)를 얹은 무익공(無翼工) 5량가인데, 좌측의 한 단 높은 건물은 내진주(內陣柱) 위에 짧은 기둥을 세워 대량(大樑)과 퇴량(退樑)을 받게 하였다.
또한 대량 위에는 동자주(童子柱 : 세로로 세운 짧은 기둥)를 세우고 종량과 판대공(板臺工)을 올려 종도리를 받게 하였으나, 낮은 건물은 종량을 동자주 없이 바로 대량 상부에 놓고 판대공을 두어 종도리를 받게 하였다. 한수정은 삼면을 둘러싸고 있는 연못과 바위, 그리고 수목이 잘 어울려 조화된 경관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