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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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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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의 전문기술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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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신라시대의 전문기술관직.
내용

제방을 축조하는 데 있어서 도끼를 다루는 기술자이다. 이는 「영천청제비정원14년명(永川菁堤碑貞元十四年銘)」(798)에 청제를 보수하기 위하여 부척 136명과 법공부 14,140명, 그리고 조역(助役)으로서 절화(切火)·압량(押梁) 두 군에서 각각의 인원을 동원하였던 사실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136명이라는 많은 수의 부척을 동원한 것은 비문 가운데 보이는 상배굴리(上排掘里), 곧 수문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나무통관을 설치하기 위하여 큰 나무를 베고 다듬는 것과, 청제를 보수하면서 새로 쌓은 부분과 그 이전부터 있었던 부분이 잘 결합하도록 많은 말뚝을 박거나 또는 목책(木柵)을 설치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들은 절화·압량(押梁) 두 군에서 동원된 조역(助役) 들의 보조를 받으면서 작업을 진행했던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참고문헌

『신라수공업사(新羅手工業史)』(박남수, 신서원, 1996)
『한국금석유문(韓國金石遺文)』제3판(황수영 편, 일지사, 1976)
「영천청제비(永川菁堤碑)를 통해 본 청제(菁堤)의 축조(築造)와 수치(修治)」(이우태, 『변태섭박사화갑기념사학논총(邊太燮博士華甲紀念史學論叢)』, 1985)
「영천청제비(永川菁堤碑) 정원수치기(貞元修治記)의 고찰(考察)」(이기백, 『고고미술(考古美術)』 102,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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