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목활자본. 1711년(숙종 37) 북한산성 축조시에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이었던 승려 성능(性能)이 도총섭의 직책을 서윤(瑞胤)에게 인계할 때 산성에 관한 14조를 지지의 형태로 기록한 책이다. 책머리에는 북한산의 지세, 북한산성의 윤곽, 절 · 도로 · 창고 · 문루 · 장대(將臺) · 창고 등을 그려 놓은 북한도(北漢圖) 3장이 있고 책 끝에는 편찬자인 성능의 발문이 있다.
성능은 지리산 화엄사에 있다가 북한산성을 쌓을 때 팔도도총섭의 직책을 맡아 산성 안의 중흥사(重興寺)에 머무르며 370여 명의 중들과 함께 약 30년 간 산성을 지켰다. 내용 구성은 도리(道里) · 연혁(沿革) · 산계(山谿) · 성지(城池) · 사실(事實) · 관원(官員) · 장교(將校, 吏卒附) · 궁전(宮殿) · 사찰(寺刹) · 누관(樓觀) · 교량(橋梁) · 창름(倉廩) · 정계(定界) · 고적(古蹟) 등으로 되어 있다.
도리조에는 동으로 양주목까지(60리), 서로 고양군까지(30리), 남으로 경도까지(10리), 북으로 홍복산(弘福山)까지(20리)의 거리와, 이곳이 이전에는 양주 소속이었다가 당시에 한성부로 이속되었음을 기록하였다.
연혁조에는 고구려의 북한산군(北漢山郡, 또는 南平壞)이었던 이후 온조가 쌓았던 옛터에 산성을 쌓기까지의 역대 내력이, 산계조에는 삼각산 및 인수봉 · 백운봉 · 만경봉 등 32개의 봉(峯), 천룡강(天龍岡) 등 3개의 강(岡), 의상대(義相臺) 등 8개의 대, 장춘동(長春洞)등 11개의 동, 여기담(女技潭) 등 2개의 담, 국녕폭(國寧瀑) 등 2개의 폭포의 위치 및 이들에 관한 시문이 수록되어 있다.
성지조에는 성의 둘레 · 높이, 문의 수와 규모, 장대, 성곽 등 성의 규모와 시설에 관한 내용이 있다. 이 내용에 의하면 성의 둘레는 7,620보이고, 성에는 문 14, 장대 3, 성곽 143, 못 26, 우물 9개소가 있었다. 사실조에는 북한산성의 축조과정이 기재되어 있다.
북한산은 임진왜란 ·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그 중요성이 재인식되어 1659년(효종 10)에 왕이 송시열(宋時烈)에게 명함으로써 산성 수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숙종조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축성 계획이 검토되고 1711년 2월에 비로소 축성이 결의되었으며 4월에 축성이 시작되어 9월에 완료되었다.
관원조에는 경리청(經理廳) · 도제조(都提調) · 제조(提調) · 낭청(郎廳) · 관성장(管城將)의 인원과 임무를 수록하였고, 장교조에는 경리청 · 관성소(管城所) · 대성문(大成門) · 승관(僧管) · 훈련도감유영(訓鍊都監留營) · 금위영유영(禁衛營留營) · 호조 등으로 나누어 소속 장교와 이졸(吏卒)의 인원 등을 수록하였다.
궁전조에는 행궁(行宮) · 내전(內殿) · 외전(外殿), 사찰조에는 향림사(香林寺) 등 18개의 절과 도성암(道成菴) 등 3개 암자, 누관조에는 항해루(沆瀣樓) 등 3개 누정, 창름조에는 경리청의 상창(上倉) · 중창(中倉) · 하창(下倉) · 평창(平倉) · 호조창(戶曹倉)과 훈련도감유영 · 금위영유영 · 어영청유영 등의 규모 · 위치 · 건립연대 · 시문 및 관련 사실들을 기록하였다.
정계조에는 훈련도감 · 금위영 · 어영청의 관할 구역이, 고적조에는 옛석성[古石城] · 신혈사(神穴寺) · 최영장군전지(崔瑩將軍戰地) · 민지(閔漬)의 유적[閔公遺積]에 얽힌 이야기들이 밝혀져 있다. 수도 방어를 목적으로 축조한 18세기초의 산성의 구조와 시설 · 축성 과정 등은 물론, 북한산성내의 지형과 고적 등을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국립중앙도서관 · 규장각도서 · 장서각도서 등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