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은 실제로 난의 진압을 총지휘한 병조판서 오명항(吳命恒)으로, 수충갈성결기효력분무공신(輸忠竭誠決機效力奮武功臣)이라 하였다.
2등은 직접 일선에서 적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운 박찬신(朴纘新)·박문수(朴文秀)·이삼(李森)·조문명(趙文命)·박필건(朴弼健)·김중만(金重萬)·이만빈(李萬彬) 등 7인으로 수충갈성효력분무공신이라 하였다.
3등은 역시 토역(討逆 : 반역을 토벌함.)에 종사한 조현명(趙顯命)·이수량(李遂良)·이익필(李益馝)·김협(金浹)·이보혁(李普赫)·권희학(權喜學)·박동형(朴東亨) 등 7인으로 수충갈성분무공신이라 하였다.
이들 중 김중만은 뒤에 고변자를 2등으로 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이유로 3등으로 강등되었으며, 조문명은 왕세자의 장인일 뿐 별다른 공이 없다고 하여 물의가 있었다.
공신책봉에 따르는 토지지급과 같은 은전은 없었으며, 단지 공신녹권을 지급하여 후손의 녹용(錄用)을 보장하고 당사자의 자품(資品)을 올려주는 데 그쳤다. 이 분무공신 책봉을 끝으로 이후의 조선시대의 공신책봉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