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고종 32) 작. 삼베 바탕에 채색. 세로 5.73m, 가로 3.46m. 영환(永環)·응석(應釋)·창엽(瑲曄) 등 5명의 금어(金魚 : 불화에 숙달된 畫僧)와 9명의 편수(片手)가 그렸다. 발원자인 상궁 엄씨는 1897년에 아들(영친왕)을 낳아 귀인에 책봉된 뒤, 1903년에 황귀비(純獻皇貴妃淳嬪嚴氏)로 봉해졌다.
민비의 시위상궁이었던 엄씨 등이 1895년 8월에 을미사변 때 시해된 명성황후(明成皇后)가 극락에 상품상생(上品上生)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원하고 있다. 그리고 대군주저하(고종)·왕태자전하(순종)·왕태비전하(순명효왕후민씨)·대원군합하(흥선대원군)의 만수무강과 불법(佛法)으로 국가·만민·천하가 태평하기를 빌고 있다.
삼존불(三尊佛)만을 입상형태로 나타낸 삼세불 괘불탱이다. 연꽃을 받쳐 든 석가불 좌·우로 약합을 든 약사불과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 모양을 한 아미타불이 묘사된 삼세불(三世佛) 괘불탱이다.
삼세불이란 과거불은 아미타, 현재불은 석가, 미래불은 미륵으로 삼는 것이 일반적이나 석가불·약사불·아미타불의 삼세불화는 조선 후기에 성행하는 형식이다. 현재불인 석가불을 중심으로 수명장수를 위한 약사불과 사후(死後) 극락왕생을 위한 아미타불로 구성된 삼세불은 ‘불(佛)의 영원성’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원형 두광(頭光 :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을 지닌 삼세불은 거신광(擧身光 : 부처나 보살의 온몸에서 나오는 빛)을 배경으로 서 있다. 석가불과 약사불은 두 어깨를 덮는 통견(通肩 : 어깨에 걸침), 아미타불은 오른쪽 어깨가 드러난 우견 편단(右肩偏袒)의 법의(法衣 :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를 걸쳤다. 연꽃을 든 여래형 석가불은 1705년 용문사 괘불탱, 1788년 남장사 괘불탱 등 영산회상도에 등장하며, 19세기 후반기에 서울, 경기지역 괘불탱에도 성행한다.
둥근 얼굴에 올라간 눈, 큰 코, 두터운 입술의 표정 및 경직된 형태, 문양과 채색이 억제된 삼존불입상은 섬세함이 결여된 19세기 말기의 불화 양식을 대변하고 있다. 당시 경기 지역 최고의 불화 작가들이 참가한 왕실 발원의 이 삼세불 괘불탱은 11월26일부터 12월1일까지의 제작 기간이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