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산 비암사 ( )

불교
유적
백제 말 통일신라 초 창건된 사찰.
이칭
이칭
비암사(飛菴寺)
유적/건물
건립 시기
백제 말 통일신라 초
소재지
세종특별자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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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비암사는 백제 말 통일신라 초 창건된 사찰이다. 백제 유민들이 조성한 불비상이 전한다. 계유(673)명아미타삼존불비상은 백제 유민 달솔 신차가 조성에 참여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에도 비암사(飛庵寺)가 등장한다.

정의
백제 말 통일신라 초 창건된 사찰.
건립 경위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주1이다. 백제 말 통일신라 초에 창건된 사찰로 7세기 후반 백제 유민이 남긴 불비상(佛碑像)이 전하고 있다. 불비상은 비석같은 돌에 불상과 비문이 함께 남겨져 있는 것을 말한다. 불비상이 절에 있어서 언제부턴가 절 이름의 날 ‘비(飛)’가 비석 ‘비(碑)’로 바뀐 듯하다.

변천

『비암사중수기』(1958)에 신라 말 도선이 중창했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에 전의 비암사(飛庵寺)에 이유태가 머물렀다는 기록이 나온다.

형태와 특징

비암사에서는 불비상처럼 생긴 계유명 전씨 아미타불 주2, 기축명 아미타불 주3이 발견되었고 현재 청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계유명 전씨 아미타불 비상은 비암사 3층 석탑 위에서 발견되있다고 한다. 이 불비상을 만든 사람은 백제 관등의 달솔 신차와 승려 혜명법사 등이라 전한다. 국왕 대신과 칠세부모들의 주4들을 위해 조성하였다고 하는데, 이때 국왕은 백제의 의자왕 또는 신라의 왕이라는 견해가 있다.

비암사에는 극락보전, 대웅보전, 명부전, 산신각 등의 전각이 있다. 중요 유물로 보물 전의 비암사 극락보전(全義 碑巖寺 極樂寶殿),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로 전의 비암사 삼층석탑(全義 碑岩寺 三層石塔), 전의 비암사 영산회 괘불탱화(全義 碑岩寺 靈山會 掛佛幀畫), 전의 비암사 소조 아미타여래 좌상(全義 碑岩寺 塑造 阿彌陀如來 坐像) 등이 있다.

의의 및 평가

달솔 신차 등 백제 유민들이 모여 주5를 도모했던 절이다.

참고문헌

원전

『조선왕조실록』

단행본

권인한·김경호·윤선태, 『한국고대문자자료연구-백제(하): 주제별』 (주류성, 2016)

논문

강진원, 「계유명 아미타삼존사면석상 명문검토」(『목간과문자』 12, 2014)
조경철, 「백제 유민의 숨결, 계유명 아미타삼존불비상」(『고대로부터의통신』, 푸른역사, 2003)
주석
주1

불교의 한 종파의 우두머리인 큰절의 관리를 받는 작은 절. 또는 큰절에서 갈라져 나온 절. 우리말샘

주2

암적갈색의 부드러운 성질의 납석(蠟石)으로 만든 통일 신라 초기의 불상. 우리나라 국보이다. 우리말샘

주3

충청북도 청주시 국립 청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비상. 비암사에 있던 세 점의 비상 중 하나이다. 배 모양으로 된 큰 돌의 앞면에는 아미타불과 여러 보살의 군상(群像)을 조각하였고, 뒷면에는 네 줄의 명문을 새겼다. 신문왕 9년(689)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보물이다. 우리말샘

주4

심령(心靈)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중생’을 달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5

부처가 중생을 교화하는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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