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수 ()

목차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 후기의 병종인 삼수군(三手軍) 가운데 장병기(長兵器)인 궁시(弓矢)를 잡고 싸우던 군사조직.
목차
정의
조선 후기의 병종인 삼수군(三手軍) 가운데 장병기(長兵器)인 궁시(弓矢)를 잡고 싸우던 군사조직.
내용

임진왜란을 계기로 종래의 궁시 위주의 전투로부터 새로 등장한 조총 등 화포 중심의 전투로 전쟁양상이 바뀜에 따라 궁시의 가치는 크게 하락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조총을 한번 쏘는 동안 궁시는 여러 발을 쏠 수 있고, 비가 올 경우에는 조총의 사용에 많은 난점이 있어서 조총을 보완하는 무기로서 궁시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조선 후기의 군사가 삼수(三手)·속오제(束伍制)에 의하여 새로이 편제, 훈련되는 과정에서 중앙의 훈련도감 등의 삼수군 중 사수가 가장 늦게나마 편성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반면에 지방의 속오군에서는 삼수군 중 가장 손쉽게 충원할 수 있었던 사수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사수의 편제는 1대(隊)에 대총(隊總) 1인, 사수 10인, 화병(火兵) 1인으로 편성되었고, 포수를 전면에, 살수(殺手)를 후면에 두고 훈련 및 실전에 임하도록 하였다. 궁시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 장기로 전수되어왔던 까닭에 포수나 살수에 비하여 기예의 훈련이 덜 강조되었다.

그러나 삼국시대 이래의 성곽에 의지하는 외적 방어전술이 조선 후기에도 유지되는 한편, 철전(鐵箭)·편전(片箭)·유엽전(柳葉箭) 등 여러 종목의 사예(射藝)가 무과와 군사 시취(試取)에 주요과목으로 존속되어 여전히 다른 무예보다 사예가 널리 보급, 계승되었다.

참고문헌

『대전회통(大典會通)』
『진관관병편오책(鎭管官兵編伍冊)』
『조선시대군제연구(朝鮮時代軍制硏究)』(차문섭, 단국대학교출판부, 1974)
집필자
오종록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