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예도 ()

교통
제도
고려시대 22개 역도(驛道) 중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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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 22개 역도(驛道) 중의 하나.
개설

고려시대 개경(開京)에서 서해도(西海道)의 계수관(界首官)인 안서대도호부(安西大都護府) 해주(海州) 관내(管內)로 향하는 역로망이다.

내용

『고려사』 권82 병지2 참역(站驛)에 따르면, “산예도(狻猊道)는 10개의 역을 관할한다. 산예(狻猊)[개성(開城, 황해북도 개성특급시)], 금곡(金谷)[백주(白州, 황해남도 배천군)], 심동(深洞)[염주(塩州, 황해남도 연안군)], 청단(淸端)·가율(嘉栗)·망정(望汀)·금강(金剛)·양계(楊溪)[안서(安西, 황해남도 해주시)], 유안(維安)[청송(靑松, 황해남도 송화군)], 좌구(佐丘)[영강(永康, 황해남도 강령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산예도라는 역도 명칭이 『고려사』에서 가장 먼저 언급된 산예역의 역명에서 유래한 만큼, 산예역은 이 역도에 속한 10개 역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역으로 개경에서 예성강을 건너 서해도로 향하는 관문(關門) 역할을 하였다. 이처럼 산예도와 같이 대표 역 이름을 붙인 역도들은 대개 궁예(弓裔)가 철원·송악을 중심에 두고 확보한 후고구려(後高句麗) 영역 내에 분포하는 공통점을 보인다.

따라서 이들 역도는 개경 가까이에 위치하는 거리만큼이나 역의 설치와 역로의 정비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들 역도의 분포 영역은 교통 중심지대인 개경을 중심으로 ‘X’자형의 간선 교통로를 형성하면서 교통 거점 상호간을 연결하였다. 산예도의 경우는 그러한 간선로에서 벗어나 있지만, 개경에서 해주와 풍주(豊州) 방면으로의 역로를 관할하였다.

산예도의 역 분포 현황은 개경 방면에서 벽란도(碧瀾渡)를 통해 예성강을 건너 금곡역-심동역을 거쳐 5개의 역이 소재하는 해주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북쪽 속현인 안주(安州)에서 절령도(岊嶺道)의 역로와 만났고, 서쪽으로는 좌구역-유안역으로 이어지는 역로가 형성되어 있었다.

산예도의 경로상에 위치한 예성강의 좌우 연안에는 금곡포(金谷浦)와 벽란도가 위치하였다. 이 중 고려 해운활동의 주요한 출입구인 벽란도에서 산예역을 거쳐 왕성(王城)으로 통하는 역로 구간은 대규모의 세곡(稅穀)을 포함한 물자를 운반하는 수많은 수례가 왕래하는, 노면(路面)이 평탄하고 폭도 넓은 대로(大路)였다.

또한 산예도가 분포하는 풍주와 옹진현(瓮津縣) 일대의 세곡을 거둬들이는 조창(漕倉)인 안란창(安瀾倉, 장연현)으로의 운수활동 때에도 해상 조난처(遭難處)인 장산곶(長山串) 앞 바다를 경유하는 해운보다는 유안역과 좌구역으로 연결되는 산예도의 역로를 이용하여 대동만(大東灣)의 안란창으로 실어 날랐다.

의의와 평가

고려시대 산예도는 개경에서 서해도 연안을 따라 해주-풍주를 잇는 역도망이다. 이 경로상에 벽란도와 금곡포라는 예성강변의 나루시설이 위치하여 수륙의 교통운수활동이 활발하였다. 또한 조선 태종대에 황해도의 조세를 효과적으로 운송하기 위해 예성강 하구에 강창(江倉)인 금곡포창(金谷浦倉)을 신설함에 따라 풍주의 청송·영강현-해주-염주-백주로 이어졌던 고려시대 산예도의 역로가 인근 고을에서 금곡포창으로의 육운활동에 활용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대동지지(大東地志)』
『고려시대 교통운수사 연구』(한정훈, 혜안, 2013)
『『고려사』 병지 역주』(이기백·김용선, 일조각, 2011)
『국역 고려사』18(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경인문화사, 2011)
「고려·조선초의 역로망과 역제 연구」(정요근,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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