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을 치르는 과정에서 척계광(戚繼光)의『기효신서(紀效新書)』에 기록된 절강병법(浙江兵法)이 왜군방어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조선의 중앙군과 지방군은 각각 1593년(선조 26)·1594년부터 속오제(束伍制)에 의해 편제되어 삼수기(三手技)를 훈련받기 시작하였다.
조총의 등장으로 종전과 전혀 다른 전투양상이 전개됨으로써 포수(砲手)가 가장 중시되었으나, 근접전에서는 살수에 의지하여야 되었던 까닭에 살수는 포수에 버금가는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조선의 살수는 보병으로서 각 대(隊)가 대총(隊總) 1인 밑에 등패(藤牌) 2인, 낭선(狼筅) 2인, 장창(長槍) 4인, 당파(钂鈀) 2인, 화병(火兵) 1인으로 편제되어, 대체로『기효신서』의 편제와 유사하였다.
창검술 및 등패·낭선·당파 외도 목곤(木棍)·권법(拳法) 등 다양한 살수기(殺手技)가 훈련되었으며, 이들 기예는 또한 군사 시취(試取)의 과목으로도 적용되었다. →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