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부(下部) 출신. 관등은 한솔(扞率)이었다. 백제 성왕대는 국력이 크게 신장되고 대외적으로도 신라와 손을 잡고 대고구려전에서도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래서 개로왕 이래 고구려에 빼앗겼던 한강유역의 고토를 회복하는 대업을 이룩하였다.
그런데 신라 진흥왕은 돌연 태도를 바꾸어 지금까지 백제와의 화친관계를 포기하고 백제의 동북부를 강탈하여 이를 신주(新州)라고 명명하고 김무력(金武力)을 군주(軍主)로 임명하여 이를 수비하게 하였다. 이와 같은 신라의 배신행위에 성왕은 크게 격분하였다.
성왕은 금관가야의 멸망 이후 신라로부터 크게 압박을 받고 있는 대가야를 비롯한 기타 가야의 잔존세력과 합세하고, 멀리 왜에도 통하여 원군을 청하여 553년(성왕 31) 신라를 쳤다. 이때 삼귀가 왜에 파견되어 원병을 청하였는데, 왜로부터 얼마의 지원병을 얻었는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