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양동 금동 관음보살 입상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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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양동 금동관음보살입상
서울 삼양동 금동관음보살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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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의 보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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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국시대의 보살상.
개설

1968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 20.7㎝. 1967년 서울특별시 강북구 삼양동에서 발견되었다. 광배를 잃고 군의(裙衣)와 천의(天衣) 자락 일부에 손상을 입었으나, 도금 상태가 양호한 거의 완전한 형태의 금동불이다. 살이 올라 통통해진 얼굴과 신체, U자형으로 늘어진 이중의 천의, 끝이 누그러진 군의 자락 등에서 조성 시기는 7세기 초로 추정된다.

내용

얼굴은 살이 올라 통통한 둥근 얼굴이다. 지그시 감은 긴 눈은 부은 듯 융기되었다. 눈썹에서 이어진 콧날은 유난히 날카롭게 강조된 반면, 턱선은 거의 사라져 둥글게 표현되었고 입은 아주 작고 엷은 미소가 서려 있다. 얼굴의 부드러운 모델링과 여성적인 모습은 불(佛)의 미묘상(微妙相)을 표출한 것이다.

머리 위의 보관(寶冠)은 삼각형의 삼면관(三面冠)이다. 중앙의 앙련좌(仰蓮座) 위에는 결가부좌(結跏趺坐)한 화불(化佛)이 새겨져 있다. 이러한 보관의 화불은 관음보살의 도상적(圖像的)인 특징의 하나이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정병(淨甁)과 함께 이 보살상이 관음보살임을 말해준다. 따라서 이 보살상은 삼국시대 말기에 단독상으로서 크게 유행하였던 관음신앙의 단면을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귀는 평판적인 넓은 타원형이다. 목의 삼도(三道)는 보이지 않는다. 상체는 어깨가 좁아 위축된 모습이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어 통통한 타원형을 이루었다. 따라서 신체는 후굴(後屈)의 자세를 이루고 있다. 양어깨 너머로 드리워진 수발(垂髮: 뒤로 길게 늘어뜨린 머리)은 나뭇잎 형태로 마무리되었고 그 끝에 얕은 꽃무늬가 표현되었다. 가슴에는 널찍한 꽃 모양의 목걸이를 걸쳤다.

가슴 사이로 비스듬히 걸친 내의(內衣) 자락이 보인다. 천의는 배와 무릎 근처에서 이중으로 걸쳐 U자형으로 늘어져 있다. 이러한 이중의 U자형 천의 자락은 전시대의 보살상에서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요소로서, 중국의 북제(北齊)·북주(北周) 혹은 수나라 초의 조각 양식이 반영된 것이다.

군의는 두껍게 입혀서 다리의 윤곽이 뚜렷하지 않다. 옷주름은 몇 가닥의 판상의문(板狀衣文)으로 단순화되어 있다. 오른손은 허리 근처에서 입체적인 정병을 들고 있으며, 왼손은 위로 올려 엄지와 검지를 V자형으로 곧게 편 특징적인 모습이다.

대좌는 고식(古式)의 단판복련좌(單瓣覆蓮座)이다. 꽃잎은 끝과 판심(瓣心)이 뾰족해 보살상의 부드러운 모델링에 비하여 예리함이 강조되어 있다.

불상의 뒷면은 편평한데, 상체에는 양어깨를 덮고 있는 숄형의 천의가 돌려져 있다. 하체의 군의 자락은 몇 줄의 선으로 간략화되어 있다. 머리 정상에는 두광배(頭光背)를 꽂았던 광배의 촉 자국이 뚜렷하게 보인다.

참고문헌

「서울출토금동관음보살입상」(황수영, 『미술자료』12, 국립중앙박물관,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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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곽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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