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성종극의 아들 성대준(成大準)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김도화(金道和)·이만도(李晩燾)의 서문, 권말에 정원화(鄭元和)·이종기(李種杞)·성종기(成鍾璣)의 발문이 있다.
2권 1책. 목판본. 국립중앙도서관과 계명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 시 57수, 서(書) 16편, 잡저 6편, 기 3편, 발 1편, 잠 3편, 축문·제문·사실(事實) 각 1편, 권2에 부록으로 가장·행록(行錄)·유사·묘갈명·묘지명, 만장 3편, 제문 6편, 사우서독(師友書牘) 3편 등이 실려 있다.
시는 한거하는 생활 가운데 절기나 계절의 변화를 맞아 자신의 감회를 읊은 것, 금오산·매화대·부석사 등 명승지나 유적지를 유람하며 지은 것 등이 있다. 노후윤(盧厚潤)·이찬오(李贊五)·노용규(盧龍奎) 등의 시에 화운하였고, 조부 성두로(成斗魯)와 김식(金埴)·안옥(安鈺) 등 당대인뿐만 아니라 이황(李滉)·정온(鄭薀)·성혼(成渾) 등 유명한 학자들의 시에도 차운하였다.
서는 스승 유치명(柳致明), 교우 권연하(權璉夏)·안옥·노용규·우병종(禹秉鍾) 등과 성리학을 논하고 학문을 권면한 내용이 많다. 잡저에는 성리학의 주요 논쟁점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힌 「이기사칠설(理氣四七說)」·「오상설(五常說)」·「성경설(誠敬說)」·「선악설(善惡說)」 등이 있다.
기에는 자신이 은거하고 있는 창녕현 석정리의 경관과 독서하는 틈틈이 자연을 시로 읊는 자신의 생활을 적은 「석정유거기(石亭幽居記)」, 선현들의 충의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화왕산(火旺山)을 유람한 사실을 밝힌 「화왕산동유기(火旺山東遊記)」, 맥산지를 수리하게 된 경위를 밝힌 「중수맥산지기(重修麥山池記)」 등이 있다.
발은 장현광(張顯光)의 저서 『역학도설(易學圖說)』에 붙인 것이고, 축문은 정묘호란 후 조정에서 보(堡)를 설치하라는 명령이 내리자 왕현(旺峴)에 민보(民堡)를 만들기 위해 터를 닦으면서 지은 글이다. 그밖에 「사우서독」은 유치명·유지호(柳止鎬)·권연하 등이 저자에게 보낸 서간이다.
조선 후기의 사상사와 사회사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