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선운사 영산전 조성 시의 「시주록(施主錄)」에 “도광(道光) 원년에 기존의 2층 각황전(覺皇殿)이 무너지자 1층으로 고쳐 짓고, 석가여래를 주존으로, 미륵(彌勒)과 갈라(竭羅)보살을 보처로 안치하고, 이를 영산전이라 이름하였다.”고 하여, 이 삼존불은 법화경에 나오는 미륵보살과 제화갈라 보살이 협시한 석가여래삼존불로 1821년(순조 21)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머리는 촘촘한 나발(螺髮 : 부처의 머리카락. 소라 껍데기처럼 틀어 말린 모양)에 육계(肉髻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의 윤곽이 불분명하다. 그리고 중앙 계주(中央髻珠)와 정상 계주를 갖추었다. 방형(方形 : 네모반듯한 모양)의 얼굴은 직선적인 눈과 콧날 등에서 마치 칼로 빚은 듯 목석 같은 표정을 지었다. 세 겹의 삼도(三道)가 새겨진 원통형의 목도 얼굴과 상체를 어색하게 연결하고 있을 뿐이다.
신체는 네모진 벽돌을 그냥 쌓아 올린 듯 전혀 유기적으로 조화되지 못한 둔중한 형태이다. 통견(通肩 : 어깨에 걸침)으로 걸친 법의(法衣 :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의 옷주름도 칼로 빚은 듯 평면적이고 획일화되어 전혀 개성을 찾을 수 없다. 넓게 트인 가슴을 가로지르는 군의(裙衣) 상단도 세 줄의 직선으로 단순화되었다. 넓은 목깃과 복부의 옷깃 아래로 여며 넣은 소맷자락도 평면적이다.
장지와 약지를 어색하게 구부린 양손은 손목이 짧고 지나치게 작아 신체와 부조화를 이룬다. 가부좌(跏趺坐)한 양다리는 추상적인 물결형의 옷주름에 쌓여 전혀 굴곡이 드러나지 않는다. 획일적인 얼굴 형태와 딱딱한 표정, 몸의 굴곡이 무시된 방형의 둔중한 신체, 직선적인 선으로 이루어진 평판 같은 옷주름 등, 이 삼존불은 형식화가 정착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