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암성(載巖城: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의 장군으로 독자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이 때 고려는 후백제를 견제하기 위하여 신라와 통호(通好)하려 하였으나 여의치 않았다. 선필(善弼)은 왕건(王建)의 인물됨과 정치수완이 뛰어난 점에 감복하여 고려에 귀부(歸附)하기로 작정하고 고려와 신라로 통하는 길을 열어 양국이 결속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뒤에 성을 들어 고려에 귀부해오자 왕건은 자기보다 나이가 많다 하여 상보(尙父: 왕이 특별한 대우로 신하에게 내리는 칭호의 하나)로 삼아 예우(禮遇)하였다.